당신이 산 듯도 하고 죽은 듯도 하여.
엉엉 울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두 팔을 베고 엎드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
꿈에서는 남편이 살아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독박육아 중이었다. 남편은 취직을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몹시 고군분투했다.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평일엔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을 했고 퇴근하여 하원하는 아이를 데려오면 곧바로 씻긴다. 가끔 욕조에 물을 받아 물놀이를 시킨다. 아이는 정신없이 물놀이를 즐기다가 젖은 몸으로 욕실을 뛰쳐나와 나를 찾는다. 나는 축축한 바닥을 수건으로 대충 훔치며 애를 다시 욕실로 데리고 들어가 씻긴다. 머리를 말려주고 로션을 발라주고 갈아입을 옷을 챙겨주면 저녁을 차릴 시간이다.
저녁을 차리는 내내 한층 수다스러워진 아이의 말에 모두 대꾸를 하다 보면 나는 이미 기진맥진 지친다. 밥을 먹이고 애가 텔레비전을 볼 동안 설거지를 하고 한숨 돌리다 보면 아이 이를 닦여야 하고 그러면 재워야 하고...
주말이면 아이를 위해 키즈카페며 도서관, 물놀이터 같은 곳을 전전한다.
아이가 아프면 혼자 밤을 새우며 간병해야 했다.
아픈 아이가 토해놓은 토사물을 치우다가.
그러다 문득, 꿈답게도, 나에게 남편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다. '내가 남편도 있는데 왜 혼자 안달복달이었지? 그 사람이랑 연락 안 한 지가 왜 이렇게 오래됐지?' 하는 의문이 피어오른다. 아이는 벌써 다섯 살이나 됐는데 아빠랑 둘이 제대로 된 추억 하나가 없다니. 이러다 아빠가 필요한 시기가 지나버리면 얼마나 후회될까, 하며 아연해져 버렸다. 그게 꿈인 줄도 모르고 나는 남편이 있는 독서실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한참의 두드림 끝에, 그 사람이 문을 열고 나온다. 그의 눈빛은 딴 곳을 향하고 있었고, 표정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는 나에게 뭔가 화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한 번도 투덜거리지 않고 오 년이나 혼자 애를 키우고 있었는데 화를 낼 사람은 내가 아니었던가? 나는 머뭇거리며 한마디 따지지도 못한 채, 그의 냉랭한 태도를 이해하려 애쓴다. 아무래도 어느 날인가 그에게 버려달라 부탁한 작은 음식물쓰레기봉투가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 같다. 현실의 그는 그런 걸로 마음이 상하긴커녕 나를 누구보다 위해주었는데, 꿈속의 그는 그까짓 것이 서운해서 내게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오 년 동안 독박육아를 한 설움이 북받친 나는 꿈에서도 통곡을 한다. 그 억울한 울음이 무의식을 뒤덮는다.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나는 차가운 더위를 뒤집어쓰고 나비처럼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