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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화의 끝은

행복하게 사는 건 없어, 죽을 때까지 사는 거지

by 나리다

물줄기가 아이의 얼굴을 때리는 걸 보면서도, 나는 아이가 놀이를 즐기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강한 물줄기를 맞은 아이의 웃는 얼굴이 물아래로 가라앉았고, 순간 아이와 나 사이에 어떤 무중력이 휘감아 도는 듯했다. 나는 한 발자국 늦게 아이를 풀장에서 꺼내어, 다급하게 아이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생각나는 응급조치는 하임리히법이었고, 그건 음식물이나 이물질 등으로 기도가 막혔을 때 하는 응급조치였으나, 혼비백산한 나는 다른 생각이 나질 않았다. 아이를 끌어안아 올리며 몇 번쯤 복부를 압박하자, 이윽고 아이가 무언가를 토해내며 숨을 내뱉었다. 물놀이 직전에 먹은 것이 토마토였는지, 토사물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피는 아니었다.


나는 안도하며, 꿈에서 깨어났다.


나는 거의 매일 꿈을 꾼다. 어떤 꿈들은 아침에 잠을 깨는 동안에 잊히기도 하지만, 어떤 꿈들은 선명하게 기억나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으레 꿈이란 게 그렇듯이, 대부분의 꿈들은 맥락에 개연성이 없어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진다.

그럼에도 꿈에서 깨어난 직후엔 그 잔여 감정에 휩싸이곤 한다. 요새 꾸는 꿈들은 대개 회사에 지각하거나 하는 현실적인 꿈이지만 어릴 때는 좀 더 환상적인 꿈을 꾸었다. 자전거에 풍선을 달고 하늘을 난다든가 선물 상자에 파묻히는 꿈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내 주변의 현실은 모질게 나를 치댔고, 나는 낡은 전세 주택 지붕 너머로 멋진 테라스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그리며 현실에서 벗어날 특별한 어느 날을 꿈꾸었다.


"엄마, '평범'이 무슨 뜻이에요?"

아이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어떤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어떤,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나의 꿈은 좀 더 단출해졌다.

나는 평범을 지향한다.

수많은 동화들은 주인공이 엄청난 시련을 겪고 마침내 행복하게 되었다며 이야기를 끝낸다. 그 주인공들의 삶이 죽음까지 이어지는 것을 무시한 채로. 그 아름다운 동화의 끝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사실은 평범하게 사는 것이 진짜 행복한 건지도 모른다.

시련도 불행도 미움도 없이, 소중한 것들을 더 이상 잃지 않고 동정받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그게 내 동화의 끝이기를,

잠든 아이의 뒤통수를 보며,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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