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 어느 때보다 살고 싶었다
남편이 죽은 직후 한동안 심리상담을 받았었다.
코로나 시대에 갓 출산한 산모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상담은 우리 집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마스크를 낀 상담선생님에게 홍초 음료를 내밀며, '아까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 진중한 침묵은 내게 생각할 시간을 내어 주었다.
"아마 그건, 진짜 죽고 싶은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냥 그 말이 그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가장 쉬운 말이었거든요.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을 만큼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그 말이 그를 조금쯤 안심시켰는지도 모른다.
그는 낮고 차분한 음성으로,
"본인의 감정에 대해 잘 짚어내고 풀어내시는 것 같아요. 그럼 그 순간에 죽고 싶다, 는 말 대신 다른 말을 넣으려고 노력해 보는 게 어떨까요. 예를 들면 화가 난다, 짜증 난다는 말이더라도요."
나는 그 말을 잘 새겨놓았다.
말에는 힘이 있어서, 입 밖으로 자주 내뱉는 것들은 무언가를 이뤄낸다. 말은 내 입에서 나와 내 귀로 들어가고 그건 또 내 뇌리 어딘가를 지나 심장 어느께를 맴돈다.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지불식간에 죽고 싶다는 말이 머릿속을 수십 번 스쳐 지나간다. 그러면 그 말이 입술을 비집고 나오기 전에 숨과 함께 삼키곤 한다. 그 서늘한 말은 마치 꼬리가 긴 혜성처럼 불안의 흔적들을 남긴다.
죽고 싶으면서도 죽고 싶지 않았던 마음은 뭐였을까.
당신 없이도 지구가 멈추지 않아
그래서 살았다.
우리는 뭐든 함께하기로 하였으나
차마 죽음에는 함께 하지 못했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생을 거슬러선 안 되며,
죽음은 나의 생에 어긋나는 일이었으므로.
마지못해 살았으나
살기로 했으니 잘 살아야지.
당신이 없어도 잘 살아서
당신이 못다 한 생을 이어보려 한다.
바람 매서운 세상에서도
내 생을 차곡차곡 쌓아서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
그때엔 아주 오래 함께 할 수 있기를
꿈결 같은 시간 속에서 걸어 나와
죽음으로 가는 생의 길을 걷는다
너로부터 점차 멀어져
너에게로 가까워지는 여정,
고되어 몹시 지치더라도
멈추지 않는 한걸음을 더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