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리다 Nov 14. 2023

냄새로 기억하다

어느 날 문득 당신의 냄새를 맡는다면

“후각신경에서 뇌로 정보가 전달되는 방식은 다른 감각과 달리 독특하다. 다른 감각들은 모두 시상이라는 중간 과정을 거쳐 대뇌의 전문 영역으로 전달되어 인지되는 반면, 후각은 그러한 중간 단계 없이 뇌로 정보가 바로 전달된다. 그뿐만 아니라 후각은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에 바로 연결된다. 그래서 냄새는 감정과 기억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무의식적으로 작용한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후각과 기억 - 냄새,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 (인간의 모든 감각, 2009. 4. 20., 최현석)


개천 주변에서 제초작업이 한창이었다.

풀이 꺾일 때 나는 향은 더 푸릇하고 싱그럽다.     

가장 한창인 시절 죽어가는 것들은 더 처절하게 향그러운 걸까     


당신의 향기는 어디까지 퍼졌을까.

향기가 슬퍼 더 많이들 울어주었을까.     


나는 후각이 불러일으키는 감성에 약한 편이다.     

후각적 기억은 시각적 기억보다 더 생생하게 그때 그 순간을 상기시킨다.     

계절이 바뀔 때 나는 냄새라든가 비 오기 직전의 습한 냄새 같은 것이 가슴을 두드리면 조금 슬프고 조금 설렌다.     


이제 갓 스무 살이었던 연애 초기,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은 나에게 인형을 하나 선물했다. 향수를 얼마나 뿌려댔는지 지독했다. 근데 희한하게 점점 그 냄새가 좋아졌다. 나는 스무 살 된 남편이 처음으로 산 그 향수의 머스크 향이 좋아서 몇 번의 기념일인가 같은 향수를 선물해 주었다.     

그 향수 냄새도 좋아하긴 했지만 그를 생각하면 주로 떠오르는 냄새는 따로 있다.     


그에게서는 햇빛 냄새가 났다.

양지에 널어놓은 이불에서 나는 따뜻한 냄새였다.     

그와 내 옷을 같은 세제로 빨아도, 그의 체취가 섞인 옷에서는 유달리 햇빛 냄새가 났다.     

나는 가끔 그의 품에 코를 박고 힘껏 들이마셨다.

그러면 아로마테라피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안정되었다.     


나는 안정되고 단단한 그 사람을 사랑했다.

그 사람과 같이 있으면 한없이 흔들리던 내가 세상에 뿌리를 내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그날, 나는 빨래 바구니를 뒤져 그의 옷가지를 꺼내어 그것을 지퍼팩에 넣고 밀봉했다.

다시는 그의 햇빛 냄새를 맡지 못할까 봐 그랬던 것인데, 어쩐지 나는 그 뒤로 오랫동안 그 지퍼팩을 열지 못했다.

그의 햇빛 냄새를 맡았을 때 그가 그리워져 죽고 싶을까 봐 무서웠던 것 같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쉬워서, 죽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 봐 두려웠다.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기억하진 못할거야.

그러나

어느 때인가 봄바람이 불 햇빛 냄새가 나면 당신을 떠올릴 거고,

삶이 흔들릴 그 배 위에 당신 있었음을 기억할 거야.


당신은 나의 북극성이었고 꺼지지 않는 등대였다.


하나 둘 당신의 것을 떠나보내더라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당신의 등을 기억할 거야.

이전 04화 매일 술 먹는 엄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