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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Nov 16. 2023

드라이플라워

영원한 사랑이라는 거 말이야

연애가 시작되려던 그때, 그는 나를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고선 잠깐 눈을 감아달라고 말했다. 아직 키스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해서 한사코 눈을 감지 않으려 했는데, 그가 발을 동동 구르며 아무 짓도 안 할 테니 제발 눈 좀 감아 보라 했다.


어쩔 수 없이 눈을 감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마침내 눈을 뜨니 그가 빨간 장미 스무 송이를 내밀 오늘부터 1일이라 멘트를 날렸다. 공기가 선선해지기 시작한 가을날이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따뜻했고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는 종종 꽃을 선물했다.


꽃 포장지를 풀 꽃줄기를 가위로 비스듬하게 잘라내어 식초 섞은 물을 담은 유리병에 꽂으면 그 주변으로 향기가 올랐다.


며칠이면 시들어버리는 꺾인 꽃이어도 잠깐이나마 그렇게 좋았다.


임신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 그가 오랜만에 꽃을 사주었다. 드라이플라워였다. 왜 하필 당신의 마지막 꽃선물은 영영 시들지 않는 꽃이었을까.

나는 그 꽃을 가까운 곳에 걸어두고는 가끔 쳐다보았다. 그것은 매일 아름답고 언제나 향이 없었다. 아마 저 드라이플라워는 당신이 내게 준 꽃들 중 가장 오랜 시간 내 곁에 남을 것이다.  


그의 첫 기일이 되었을 때 나는 모처럼 생화를 사러 꽃집에 들렀다. 사장님이 카네이션을 추천해 주었다. 납골당에 놓을 꽃이라 하니 젊은 여자가 부모님 기일이라도 챙기려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나는 카네이션 대신 리시안셔스 꽃을 골랐. 은은한 꽃잎이 겹겹이 쌓여있어 화려한 듯 기품 있어 다. 시안셔스의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이다.

그가 살아있었으면 변했을지도 모르는데 이제 영원히 변치 않게 되었다. 영원한 건 다 좋은 건 줄 알았는데 좋은 게 다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영원 꽃은 없영원히 사는 사람도 없다.

영원한 사랑? 변하지 않는 건 이미 죽은 것뿐이지. 저기에 걸린 드라이플라워처럼.


내 사랑은 그곳에 영원히 남았다. 오래도록 영원한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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