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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Nov 17. 2023

조지아 커피캔

당신이 세상에 있던 흔적들

사별직후 내가 정말 견딜 수 없었던 건 집안 구석구석 당신의 온기가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것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당신의 웃음소리가, 흥얼거리는 노랫말이, 격려의 목소리까지 들려왔다. 냉장고 안에 당신이 먹던 아보카도와 닭가슴살 같은 것이, 둘이 함께 마시던 맥주 따위가 남아있었다. 당신이 사라지기 전날 우리는 아기를 재워놓고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신은 원래 불평불만을 떠드는 성미가 아니었는데, 한참을 회사 얘기를 하더니 '너무 내 얘기만 했네. 얘기 잘 들어줘서 고'라고 말했다. 나는 얼마든지 당신의 이야기를 더 들어줄 수 있었는데.

당신이 없는 집은 아기 울음소리가 가득해도 빈 것 같았다. 나는 빨래를 개키고 청소를 하고 아기 분유를 타면서도 수시로 당신을 불렀다. 이렇게까지 당신이 생생한데 어째서 대답이 없는 건지를 받아들이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조금씩이라도 당신의 물건을 정리해야 했다.


삼십이 년 동안 산 사람이 세상에 남겨놓은 흔적은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었다. 애초에 치우고 싶지 않았인지도 모른다.


뭐 하나 쉽게 버릴 것이 없어서 삼 년이 지나고 나서도 곳곳엔 당신의 옷 신발 같은 것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버린다고 버렸는데도 여태 한 짐이다.


나는 괜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그것들을 치울까 말까 몇 번을 들었다 놓으며, 또 몇 번을 원래 없는 공간인 것처럼 지나쳤다.


하다못해 다 먹은 커피캔조차도 쉽게 버리지 못했다. 차 운전석 문짝에는 다 먹고 버려둔 조지아 커피캔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삼 년 동안 손도 대지 않았다. 당신이 마시고 무심코 버려두었을 그 커피캔이, 그저 알루미늄 깡통일 뿐인 그 재활용 쓰레기가 당신이 세상에 있었다는 생생한 삶의 흔적이어서 차마 어찌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어쩌면 캔 입구 부분에 아직도 입술 자국 같은 게 남았을지도 모르지. 있는 듯 없는 듯 데면데면 굴면서도 혹여나 누가 치우기라도 할까 내심 걱정했으나 그렇다고 그게 무엇이니 치우지 말라 당부한 일도 없었다. 마음 한편으론 그것을 부적으로 여겼다. 캔에 남은 당신의 입술자국 같은 것이 나를 지켜줄 리 만무한데도.


그렇게 다 먹은 조지아 커피캔은 년 가까이 방치되었다.


얼마 전에 드디어 내부세차를 결심했다. 남편은 늘 손수 관리했으나 나는 전문가의 손길이 아니고선 발매트에 쌓인 모래나 먼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세차를 앞두고 자동차의 짐을 다 정리하면서도 조지아 커피캔에는 손을 댈 수 없었다. 내부세차 예약일 하루 전날까지도 그것을 따로 보관해 둘지 말지를 고민하다가 결국엔 잊은 척 그대로 두었다. 내부세차를 하던 사람이 그것을 내다 버리면 그저 당신의 흔적이 또 하나 자연스럽게 없어진 셈 칠 생각이었다. 혹시나 그대로 두었다 한대도 나는 또 그것을 본 체 못 본 체 운전석 문을 여닫을 때마다 시선 한쪽 스치고 말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그게 사라질지라도 너무 가슴 아파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으로 남길 수 있기를. 당신의 한 조각을 쉽고 어렵게 떠나보내는 그 무심함이 나의 성장이기를 바랐다. 고작 커피캔 하나에.


내부세차를 마친 차에 올라타자마자 운전석 문짝을 내려다보았다. 당연하다는 듯 비워져 있었다.


공교롭게도 내부세차를 마치고 첫 주행을 한 날, 무리해서 좁은 공간에 차를 주차하다가 페인트가 벗겨지도록 심하게 긁고 말았다.


정말 조지아 커피캔에 남은 입술자국 같은 것이 나를 지켜줬던 게 아닐까? 혼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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