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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Nov 10. 2024

징검다리를 건널 용기

딱 한 걸음을 더 걸어보기로 한다

징검다리 사이가 넓어지는 구간에 선 아이가 머뭇거리며 내게 손을 뻗었다. 무섭다며 잡아달란다.

나는 짐짓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번 건너봐. 빠지면 엄마가 씻겨줄게"

아이는 조금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걸음을 떼었다. 그 한 발자국으로 아이의 안에선 무언가가 바뀌었다. 자그마한 뒷모습에 두려움이 걷히고 자신감이 어렸다.


나와 남편은 같은 대학을 다녔다. 우리가 다니던 학교에도 징검다리가 있었다. 더러운 연못 사이를 가로지르며 놓인 그 돌다리엔 귀여운 미신도 있었다. 연인이 손을 잡고 건너면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몇 번쯤 그 다리를 건너보자 했을 때 나는 질색했다. 자칫하다 발이라도 빠질까 겁이 났다. 우습지만, 그 연못은 더럽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연못 위를 헤엄치는 오리들은 발이 썩어있다는 설도 떠돌았다. 연못이 깊진 않았지만 바닥엔 끈적하고 미끌미끌한 진흙이 깔려 있었다.


내가 마침내 그의 손을 맞잡고 그 다리를 건넜던 날은 그와 두 번째 이별을 예감한 날이었다.


우리는 그가 군대에 가기 직전에 헤어졌다가 그가 한창 군 복무 중일 때 다시 만났다. 거의 9개월 만이었다. 나는 나대로 이별한 동안 힘들었던 시간을 관심과 애정으로 보상받고 싶었지만 군복무 중인 남자친구가 내게 해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일단 만남 자체가 어려웠다. 군인이 휴가를 내킬 때마다 나올 수도 없는 건 당연했고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내가 면회를 자주 가기도 어려웠다.

만남은 고사하고 전화 한 통 편히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정해진 시간에 상황이 허락할 때마다 줄을 서서 공중전화를 기다렸다. 나는 그가 전화할 시간만 되면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반드시 통화가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전화조차 할 수 없는 날이 많았다. 전화를 할 수 있었어도 주머니 사정이 쉽지 않았다. 그는 돈이 떨어지면 콜렉트콜(수신자부담전화)을 했고 나는 주말 아르바이트로 번 이십만 원을 한 달 용돈으로 쓰면서 그중 오만 원 정도를 전화요금으로 냈다. 식비, 교통비, 도서구입이나 옷 구입 비용까지 충당했으니 대학생 용돈으론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학생식당을 이용하며 하루 왕복 한 시간 이십 분을 걸으면 대충 가능하다)


다시 사귄 지 두 달 만에 그가 휴가를 나왔다. 오랜만에 만난 둘 사이에 미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이미 헤어질 결심을 하고 있었다. 어지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냥 왠지 그날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은 뜨거웠고 머리는 차가웠다.

시간이 흐른 뒤에 돌이켜 그때를 생각하면, 그 거리감이 오히려 우리 사이를 채워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처음 사귀기로 한 것도 가을이었고, 그날도 가을이었다. 서늘하면서도 두께감 있던 그날의 공기냄새가 기억난다.


어둠이 내리깔린 연못가의 벤치에 앉아있다가, 먼저 징검다리를 건너자고 한 것은 나였다. 그는 의외라는 기색이었다. 좀 어이없지만 그 징검다리는 헤어짐에 앞선 내 마지막 노력이었다. 왠지 그대로 헤어지면 그 다리를 볼 때마다 후회할 것 같았다. 아마 그 사람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줄은 추호도 몰랐을 것이다.

내 손을 잡고 앞서 건너는 그의 뒷모습은 조금 신나보이기까지 했다.


결과적으로, 그 징검다리의 미신은 엉터리였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영원에 비해 너무나 짧았다.


래도 징검다리를 건너던 그 순간에 분명히, 내 안의 무언가가 바뀌었다.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우리 사이는 더 단단해졌다.


한 발자국 물러서서 바라보니 그간 서운했던 것이 다 별일 아니게 느껴졌다. 나는 그 사람이 군대 가기 전과 같은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게 어렵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가 그런 상황인 걸 다 알면서도 다시 사귀자는 말에 냉큼 손을 내민 것은, 그 사람이 없는 9개월을 견디지 못했던 내 선택이었다.

어쨌거나 그 사람은 그 상황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나를 아끼고 예뻐해 주었다. 존중과 배려는 상대에 대한 믿음에서 나왔다. 리고 그 믿음의 일부는 내 마음에서 만들어졌다.


나는 요즘도 가끔 징검다리를 건넌다. 돌 사이가 넓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한 다리 앞에서 망설임을 거듭하다 결국 너지 못하는 때도 많다.


딱 한걸음을 더 내딛는 용기가, 두려움을 이겨낸다. 소심하고 예민한 나에게 이따금 단단하고 좋은 면모가 보인다면 그건 내가 그 한걸음을 포기하지 않아서 만들어진 장점들일 것이다.


한 번 건너 봐. 빠지면 씻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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