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랜만에 당신에게 편지를 쓰네. 그곳에서는 잘 지내고 있어? 나와 아이가 보고 싶을 때면 자디잔 바람이 되어 아쉬울 만큼 잠깐동안 머물다 갔을까. 때로는 흔들리는 나뭇잎이 당신의 안부인사처럼 느껴져.
며칠 전에 당신 아들이 내게 묻더라.
어른들은 다 커서 이제 안 우냐고. 아니, 어른도 슬프면 운다고 대답했지. 그랬더니 갑자기 아빠는 다 커서 언제 울었어? 하는 거야. 나는 아이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몰라 잠깐 생각하다가, 민이랑 엄마를 두고 떠날 때 울지 않았을까? 하고 대답해 주었어.
"엄마랑 민이가 보고 싶어서?"
"응, 엄마도 가끔 아빠가 보고 싶으면 울잖아."
"엄마는 이제 다 커서 안 울고, '민아 아빠 보고 싶다' 이러자나, 대단해."
아빠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이 만 네 살 어린 아이의 의젓한 말투나 표정은 마치 당신 같아. 당신도 언제나 내 사소한 장점을 찾아 치켜세우며 '여보는 정말 대단해, 여보는 다 잘해'라고 말해주었는데.
이 아이는 당신을 많이 닮았어. 나와 함께 아이를 기른 친정식구들은 대체로 목소리가 크고 다혈질에 말투도 무뚝뚝할 때가 많은데 천만다행으로 이 아이는 본성이 다정하고 배려심이 넘쳐. 말 한마디를 해도 예쁘게 해. 그런 건 유전보다는 환경이 만드는 건 줄 알았기 때문에 좀 신기해. 어쩌면 우리들 안에 남아있던 당신의 조각들이 함께 이 아이를 키워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이 아이만큼은 우리의 상처를 답습하지 않고 당신처럼 따뜻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은 바람으로 키워서 그런 건지도.
나는 이 아이가 당신을 닮은 것이 안심이 되면서도 내게 과분한 이 행운을 또 다시 빼앗길까 두려운 마음이 들어.
소중한 사람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경험이 나를 나약하게 만드는 것 같아. 그 나약함을 떨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나 당신이 지켜주고 있을 거라고 믿는 것뿐이겠지.
나는 매일 밤, 이 자그마한 아이를 있는 힘껏 끌어안으며 조개껍데기처럼 예쁜 귀에다 주문처럼 속삭여.
"네가 너무 귀하고 소중해. 소중하니까 소중하게 대해줄 거야. 엄마가 잘할게. 사랑해."
아이의 아이다움을 참지 못하고 결국 매번 큰소리를 내고 마는 내 부족함에 대한 반성과 앞으론 더 잘하겠다는 다짐을 담은 주문이야. 그러면 내 아이는 잠이 들랑 말랑 한 나른한 목소리로 대답하곤 해.
"나도 사랑해. 백구십백만큼 사랑해."
"너는 어떻게 이렇게나 사랑스러울 수가 있어? 비결을 알려줘. 엄마도 좀 사랑스러워지게."
"엄마는 지금도 사랑스러워."
나는 내가 헌신과 봉사를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헌신 비슷한 것을 하게 되더라. 밤새 쪽잠으로 버티면서 아픈 아기를 돌본다거나 하루에도 몇 번씩 똥기저귀를 갈고, 씻고 먹이고 입히는 모든 일들이 내가 낳은 자식이라 당연한 일이면서도 한편으론 엄청난 희생이잖아.
그런데 이 아이는 언제나 그 헌신과 희생이 무색할 만큼의 것들을 내게 돌려주었어.
여보. 나는 처음엔 '엄마'가 아니라 그냥 아이를 낳았으니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 여자였거든.
시간이 지나니 서투르지만 천천히 엄마가 되어 가는 것 같아. 어리숙하고 모자라지만 좋은 엄마가 되기를 포기하지 않는 엄마.
당신은 어떤 아빠였을까?
나는 가끔 아빠가 된 당신 모습을 상상해. 당신이 있었더라면 아이와 어떤 표정으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지, 연인이나 남편이 아닌 아빠로서의 당신은 어땠을지 궁금해.
아이를 씻기며 짓궂은 장난을 치거나 아이를 높이 들어 올려 깔깔 웃는 아이의 둥근 배에 뽀뽀를 해주고, 밤이면 아이를 품에 안고 아이가 잠들 때까지 동화책을 읽어주며 깜빡 졸기도 했겠지. 당신과 함께 육아 시행착오를 겪고 싶다. 아이를 위한 일들을 함께 고민하고 잠든 아이의 손발을 만지며 같이 귀여워해주고 싶다.
당신은 얼마나 그러고 싶었을까.
다정하고 따뜻한 당신은 정말 좋은 '아빠'가 되었겠지. 그걸 알아서 더욱 아쉽고 가슴이 시려.
다른 차원, 다른 우주에서라도 어떻게든 당신에게 아빠로서의 시간이 주어졌기를 바라. 내가 알지 못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세상에선가 보상받고 있기를. 그리고 우주가 돌고 돌아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는 어느 지점에서, 그때는 우리가 모두 함께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