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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Oct 13. 2024

현재를 산다

기욤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를 읽고(스포 있음)

나는 이 책의 제목을  때마다, 이 책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예고편 속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김윤석 배우 과거로 되돌아가, 오래전에 죽은 연인을 눈으로 좇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난간을 붙잡고 멈추어 선 장면.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그때 김윤석 배우의 아련함, 그리움, 미안함이 뒤섞인 복잡하고 애절한 표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내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면 그건 행운일까 불행일까? 내가 본 타임슬립 창작 주인공들은 대체로 과거를 바꾸려 할수록 더 불행해질 뿐 과거를 바꾸지 못했다. 나는 영화의 예고편으로만 접했던 이 작품이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맺을지 궁금해졌다.


주인공 엘리엇은 30년 전에 사랑하는 연인 리나를 사고로 잃었다. 그는 우연히 얻은 알약의 힘으로 3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고 젊은 시절의 자신을 만났다. 젊은 엘리엇에게 일리나를 살릴 방법을 알려주면 쉬웠겠지만 늙은 엘리엇에겐 일리나와 별 후 다른 여자와의 사이에서 얻은, 목숨보다 소중한 딸이 있었다. 그 딸을 잃지 않으려면 젊은 엘리엇이 일리나와 맺어져서는 안 되었다. 그렇다고 일리나가 죽게 놔둘 수도 없었그는 일리나와 헤어지는 것을 조건으로 젊은 엘리엇에게 일리나를 살릴 방도를 알려주었.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사랑했던 일리나를 살려낼 수 있었다. 젊은 엘리엇은 약속대로 일리나와 헤어졌다. 절친한 친구 매트도, 불구가 된 일리나와 끝내 헤어진 엘리엇에게 화를 내며 그의 곁을 떠났다. 결국 젊은 엘리엇은 연인과 친구를 모두 잃고 오직 소중한 딸을 키우며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있지만 그 사람 곁에 있을 수 없다면 이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문이 들었다. 평생 내 곁에 없어도 그저 살아있기만 했다면 좋았을까.


어쩌면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 한 번쯤은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 사람이 곁에 없는 긴 시간을 버티게 해 주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늙은 엘리엇은 다시 일리나와 만나게 되었으니까.


과거로 돌아가 죽은 연인을 살려내 현재에 재회할 수 있다니 아름답고 다행 결말인데 나는 좀 상심했다.


책 주인공이 행복해졌는데 상심했다니 놀부 같지만 나는 엘리엇이 행복해진 게 싫었던 게 아니다. 삼십 년이라는 지독한 시간을 자책과 그리움으로 견뎌낸 그가 마침내 그 모든 걸 떨치고 행복해졌다니 참 잘 되었다.

다만 현재와 미래를 살아야 하는 인간이, 과거의 무언가를 바꿔 그동안 고통스럽게 버텨온 시간을 헤집어 놓고도 행복해졌다는 결말이 싫었.  


우리는 과거를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과거는 더 이상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 되는 일에 매달려 현재를 낭비해선 안 된다. 그런데 이 책의 결말을 보, 애써 덮고 있던 후회의 조각들이 가슴을 후벼 팠다. '만일 그때 그랬더라면'이라는 이름의 조각들이었다.

내가 그때 어쩔 수 없이 일터로 나가는 그의 마음을 배려하지 않고 좀 더 투정을 부리거나 화를 냈다면 혹시라도 당신이 내 곁에 남지 않았을까. 아니 당신은 그래도 나갔겠지만, 당신이 나가는 시간을 좀 더 늦출 수만 있었어도 무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행복은 현재에서 찾고 현재에서 쌓아야 하는 것이지 과거로 돌아가 무언가를 바꾸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사람이 생각날 때마다 매일 매 순간을 울었고, 내 품엔 젖먹이 아기가 안겨 있었다. 몇 개월이 지나자 아기는 기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도 나는 침대 아래에 쪼그려 앉아 당신 생각에 울음을 뜨렸는데, 문득 내 앞으로 기어 온 아기와 눈이 마주쳤다. 말도 못 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작은 생명체의 또렷한 눈빛을 마주치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눈빛이 아니었다. 나는 얼른 울음을 거두고 아이에게 웃어주었고, 아이도 나를 보며 방긋 웃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현재밖에 없었다. 내 미소를 보고 따라 웃는 그 아이가 나의 현재이자 미래였다. 과거를 잊고 싶은 것도 아니고 잊을 수도 없다. 그러나 그건 내가 끌어안고 가야 하는 내 한 부분일 뿐이다.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지만, 돌아오라 울부짖지 않는다.

그 사람은 나를 기특해할 것이다. 나는 자잘하게 투덜거리고 징징대는 사람이지만, 정말 힘든 순간에는 묵묵히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며, 그 사람은 내 그런 모습을 좋아했으므로 내가 과거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을 감사히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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