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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리다 Oct 20. 2024

푸릇한 죽음에 기도를 올리며

죽음이 꽃처럼 피었다 삶이 그림자처럼 시들었다

때는 차가움이 무르익는 겨울이었다.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사방에 눈부셨다. 화려한 조명을 지나 좁고 어두운 복도 너머에 슬픔이 깊게 가라앉았다. 선득한 바람이 코끝을 에이며 스쳤다. 젊음이 전구처럼 화려해서 아팠고 그래서 어둠은 더 짙었다.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었어도 죽음은 가차 없었다. 그것은 체온이 묻은 눈물처럼 뜨겁고 턱끝의 이슬처럼 차가웠다.


겨울, 남편과 친했던 형이 갑자기 혼수상태가 되어 한동안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십 대 초중반쯤 되었다.

성실한 사람이었다.

남편보다 일 년 먼저 입사해서, 뒤로 신입사원이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삼십 분 일찍 출근해 사무실 바닥을 쓸고 닦는 일을 멈추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남편도 매일 삼십 분 일찍 출근해 같이 청소를 했, 남편과 손잡고 출근하고 싶었던 나까지 출근 시간이 빨라져 투덜거렸지만 덕분에 다른 직원들은 깨끗한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남편은 그 형을 잘 따랐다. 그 형도 성실하고 착한 남편을 예뻐했다.


남편이 죽은 뒤 그 형은 많이 울었다고 했다. 어제 살아있던 내 듬직한 동료를 하루아침에 잃어 황망했을 것이다. 형은, 남편이 사무실에서 쓰던 잡동사니를 종이봉투에 담아 내게 전해주었다. 나는 마땅히 그 물건들을 스스로 정리해야 했으나 일부를 버려달라고 부탁했다. 사무실에서 신던 슬리퍼 같은 것들이었다. 가끔  일이 생각났다. 모처럼 유품을 정리해 갖다 준 고마운 사람에게 별일을 다 시켰다. 아마, 내가 버려줄까? 하고 그냥 한 말에 곧이곧대로 그렇게 해달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변명하자면 나는 당시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결정하느라 지쳐 있었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옷장엔 남편의 옷가지가 남아있만큼, 뭐를 버리고 남길지 결정해야 했던 모든 순간들이 찢어질 듯한 고통이었다. 아마 그 슬리퍼를 형에게 버려달라고 부탁했던 것도 그 결정의 소용돌이 속에 내가 할 수 있었던 소심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남편의 사무실 슬리퍼를 버려달라 해놓고 멋쩍게 웃었던 기억 한 편으로, 그까짓 슬리퍼 내가 종량제 봉투에 넣었어도 될 것을 왜 그랬을까 각날 때마다 후회했다. 훗날 그 형에게 변명할 수 있는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유 있는 어느 때 밥 한 끼 같이 먹으며, 남편을 닮은 자식의 좋은 면들을, 혹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면면을  보는 척 자랑하 사람을 함께 그리워할 수 있었을 지인을 잃었다. 살아가는 것은 내내 무언가를 잃는 일이었다.


나는 매일 인생을 더듬더듬 걷는다. 앞은 캄캄하고 삐죽이 튀어나온 더듬이는 큰 도움이 되 않는다. 어제는 어쩔 수 없고 오늘은 어찌어찌 건너는데 내일은 도무지 모르겠다. 살지 않을 수 없으니 사는데 이렇게 사는 게 옳고 그른지는 알 수 없다. 살다 보면 즐거운 일들도 있는 걸 알지만 이렇게까지 살아서 얻어야 할 즐거움일지는 확신하지 못다. 어제도 오늘도 누군가가 죽었다. 도처에 죽음이 있었다. 나는 그들을 모르고, 또는 잘 안다. 멀고 가까운 곳에서 죽음이 벌어져 나는 때론 견딜 수 없이 쪼그라든다.  


죽음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좋고 아까운 사람들이 자꾸 간다. 나는 내가 아끼는 것들, 나를 아껴주는 것들을 잃는 것이 두렵.

 

얼마 전에도 사랑하는 어린것들을 어느 젊은 어미가 하룻밤 새 세상을 떴다. 모르는 사이지만 아는 사람처럼 친밀한 느낌이 드는 이였다.


심란다.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은 공평한 척, 불합리하지만 따질 수조차 없다.


신은 존재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


부질없는 기도를 던진다.


 거면 주지 마소서,

있는 거나 뺏지 마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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