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목구멍을 열었다.

당신이 잠깐 불쌍했다.

by 세렌디퍼


하지만 드라마보다, 영화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매우 이상하리만큼 간결했다. '살기 위해' 도망친 것이라는 나의 변명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같은 부모 입장으로 그들을 이해하려 했다.


"맞을 짓을 했으니 때렸겠지."라는 핀잔까지도 내 새끼들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면 감지덕지했다. 그의 장례식은 조용했다. 잠시 잠깐 나의 입장에 소란은 있었지만 잠시뿐이었고 장례는 일사불란하게 치러졌다. 마치 누가 짜놓은 대본처럼 움직이듯 간결하고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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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rliebcn, 출처 Unsplash


이상했다.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며칠 후에야 왜 별 소동과 소란 없이 그들이 장례식에서 나를 보내줬는지 알게 됐고, 결혼 후 난생처음 부드러운 목소리로 시누이가 '언니'라고 부르며 연락은 끊지 말자고 한 속내를 깨달았다. (사실 결혼 직 후 우리 부부의 갈등은, 시누이로부터 발발되었다. 남편의 동생이었지만, 내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12년 동안 단 한 번도 나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한 적이 없는 여자였다.)


그들의 목적은 뚜렷했다. 당시 내가 모르고 있던 남편 명의 예적금이 있었는데 나와 내 아이들이 상속자가 돼버렸다는 사실이다.


그제야 머릿속에 불이 켜지고, 소름이 돋았다.

'고작 그 몇 천만을 내게 뺏길까 봐, 아들의 장례에서 그리 차분했던가?'

발인 후 일주일이 지난 후, 아버님의 전화 한 통에 한 달음에 달려 도착하자마자, 난 은행으로 이끌려 갔다. 이미 지역조합은행이라 한 식구처럼 속사정을 꿰뚫고 있는 직원은 모든 서류를 준비해 놓은 상태였고 일사불란하게 어머님 계좌로 정리하고 시댁으로 돌아왔다. 그날의 미션을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듯 정적이 흐르는 거실 한가운데서 나는 두 번째 용기를 내어 입구멍을 열었다.


"아비 자식, 제가 정말 잘 키울게요. 잘 키워낼 자신 있어요.
대신 아이들이 클 때까지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

떨리는 육성으로 꾸역꾸역 이어가던 내 열두 마디가 다 끝나기도 전에 아버님은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며 자리를 물렸다. 그리곤 아이들을 불러 오만 원짜리 한 장씩 쥐어주며, '잘 가거라.' 작별 인사를 했고 우린 그렇게 허겁지겁 그 집 마당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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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망했다.

블랙코미디인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처음으로 나의 남편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 무엇이 그토록 나에게 사랑으로 가장한 집착을 했는지, 처음으로 그를 이해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비상식적인 지배 구조 안에서 마음 붙일 곳이 그도 없었나 보다. 그를 끔찍이 , 무모하게 ,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는 이가 나처럼 그에게도 없었나 보다.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 안에서 아프게 자란 그와 내가 만나, 삐걱거렸던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절대 그를 용서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날 나는 결심했다.

"두 개의 심장으로 살아가자.
아비의 심장까지 품은 애미로.
더 이상의 악순환은 내 손으로 끊어버리리라."

나도 모르게 더 세게 액셀을 밟으며 , 핸들을 부여잡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똑똑히 봐. 내가 세상을 어떻게 씹어먹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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