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당신의 어미새가 아니야.

당신의 죽음이 성공하지 못한 나의 집.

by 세렌디퍼


도망치듯 나와버린 그 집 앞에 섰다. 현관을 마주하니 다시 그날의 저녁 바람이 생각난다. 차갑던 공기와 누군가에게 쫓기듯 황급히 뒤도 돌아보지 못한 채 서둘렀던 발걸음이 아슬하다. 분명 나는 여행을 위해 문을 나섰을 뿐이었는데 사건을 예견했던 것일까? 다급히 나섰을 때와 달리, 그 문을 잡아당기는 데에는 수십 초가 흘렀다. 내가 상상해 낼 수 있는 모든 장면을 끄집어내었다. 그래야 현실을 무던히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들어선 사랑하는 나의 집. 여기저기 뒹굴거리는 살림살이와, 무언가를 급히 찾은 듯 무질서하게 흐트러진 주방. 각 방 생활을 했기에 혼자 지내던 '작은 방'에서 시도하려다 실패한 흔적이 보였다. 초록색 박스 테이프로 창문의 네 면이 얼기설기 테이핑 되어 있었고 그날 그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난 참 '집'을 좋아한다. 심플 모던한 인테리어와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며 집을 사랑했다. 온갖 갈등과 스트레스로 힘에 겨울 때는 가만히 쉬는 것을 못하는 나는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며, 대청소를 하며 마음 정리를 해왔다. 그렇게 정리정돈 된 나의 집을 사진과 이미지로 남기는 것이 힐링인 순간도 있었다. 이리도 사랑했던 나의 집에서 집안 곳곳 무거운 냄새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썩고 있는 음식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 것 같아 숨을 참았다. 그가 어디서 막 튀어나올 것 만 같았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의 죽음은 나의 사랑하는 '집'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내가 사랑했던 집. 가장 흔들렸던 시절에 가장 아픈 나를 품어준 것은 사람이 아니라 공간이었다. 고맙고 미안하지만 스쳐 지나간 나의 집들 중에서 이 집을 '휴지통'에 넣었다. 그리곤 다시 마우스 오른쪽을 눌러, 휴지통 비우기를 눌렀다. 영구히 삭제하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온전히 보통사람처럼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정도는 가져 볼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집

다시 그를 어디선가 만날 수 있다면 묻고 싶다.

"화가 났었니?
아니면 무서웠던 거니?"


물론 둘 중 무엇이라 해도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다.

그래도 그것만은 말아야 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이들'이라는 보따리를 함께 내어놓았으니 같이 풀어나가야 했다. 부부의 인연은 종료될 수 있지만 보따리를 두고 도망간 행위는 분명한 반칙이다.


다시 한번 경찰서에 전화가 왔다. 사건종결 상담을 위해 방문을 요청하였다. 나는 그렇게 경찰서에서 그가 엘리베이터를 황급히 타고 내리던 마지막 장면을 마주했다. 집에서 실패한 그의 죽음은 아이러니하게 그의 여동생에게 받은 suv에서 성공했다. 주방에서 부탄가스와 버너를 찾아 그는 성급히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엄마 잃은 새끼 강아지처럼 어쩔 줄 몰라하는 그를 보며 난 곱씹었다.

난 당신의 어미새가 아니야.

그렇게 공간을 정리하고 무작정 달렸다. 나는 초등 아이들을 가르치는 작은 공부방을 운영한다. 제주도 여행기간을 을 겨울방학으로 안내하고 난 후였기에 나에게 1주일이라는 시간이 있었고 그 안에 장례식 및 모든 일을 해결하고 정리했다. 그래서 하루의 공백기 없이 수업과 일에 전념했다. 감사하게도 때는 겨울방학이라, 새 학년을 준비하는 친구들로 가장 북적일 때였고 유난히도 신규문의가 증가하여 감사하게 매출액의 최고점을 찍었다.


'그래, 죽으라는 법은 없어. 이대로만 유지된다면 아이들과 삼겹살 외식 정도는 마음 놓고 할 수 있겠어.'


인간의 죽음을 수용하는 5단계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이 있다면 모조리 건너뛰었다. 가르치는 생업에만 전념하며 생존을 위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인지 혹은 땅에 있는지 모를 남편이 잘 되어가는 나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일까?


딱 한 달 후, 뉴스 속보로 처음 접한 그 녀석.

"코로나19, 국내 유입"

집합금지명령이 떨어졌고, 하나 둘 학부형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강제휴원, 그리고 그만두겠다는 연락. 난 다시 멈춰야만 했다. 그때 난 이런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당신이야? 정말 이럴 거야??
우리 애들 안 보이니?"


세상은 또 나에게 쉽지 않은 숙제를 던져 주었다. 그리고 나는 꽤 오랜 시간문제 속에서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내 인생이 꽤 억울하고 가여웠다. 그렇게 알코올은 늘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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