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기대하지 않는 마음

by 장용범

누군가가 이 세상에 존재 한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더 이상 바랄 바가 없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순수한 사랑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제 친한 후배와 저녁을 함께 하면서 서로의 자녀들이 화제가 되었다. 아주 공부를 잘 하거나 특출한 재능도 없어 앞으로 뭘 해먹고 살려나 궁금해지는 아이들이었다. 후배는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해 애도 많이 태웠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이제 지방의 어느 대학에 진학을 했고 나름 자신의 길을 찾으려는 모습도 보여 더 이상 바랄 바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형님, 아이들에게 더 이상 기대하거나 바라는게 없어지니 그 놈들이 그렇게 고맙고 감사하더군요. 요즘엔 관계가 정말 좋아졌어요.”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피곤하고 조마조마한 일인지 잘 안다. 남이 나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면 날듯이 기쁘다가도 비난을 받거나 안 좋은 소리라도 듣게 되면 금새 침울해지곤 한다. 내가 그러했다. 특히 부모자식간에는 자연스레 기대를 주고받는 관계가 형성된다. 나의 유전자를 세상에 남길 존재라서 그런지 좀 더 우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어릴 때는 영재의 재능을 가진 것 같고 서울대 연고대는 그냥 들어갈 것 같지만 아이가 커 갈수록 부모의 기대치는 점점 줄어들고 자녀와의 갈등이 표면화 되기도 한다. 대부분은 부모의 기대치와 그에 못미치는 자녀들이 부닥치는 경우이다. 원인이 이러하니 갈등 해결법은 자녀들이 부모의 기대수준까지 올라 오거나 부모가 자녀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추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대수준을 낮춘다고 하니 많은 사람들은 ‘포기했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건 정말 잘못된 말이다. 자녀들에 대해 큰 기대를 하고 있다면 스스로를 살펴야 한다. 나는 내가 이루고자 하는 욕심을 내 아이를 통해 이루려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기대라는 것은 인간관계를 참 피곤하게 만드는 매개체이다. 기대를 하는 사람은 욕심이 잔뜩 끼어있고 기대를 받는 사람은 기준에 맞추기 위해 늘 초조하게 스스로를 몰아간다. 나의 지난 삶도 돌아보면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들볶으며 보낸 시간들이 많았다. 마치 그 기준에 맞추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참 피곤하게 살아왔었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 그것을 관두기로 했는데 나의 있는 그대로의 능력이나 모습을 받아 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관계는 일찌감치 정리하는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게 내가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는 꼭두각시 되기를 거부하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라는 것이 드러났다.

누군가에게 기대를 한다는 것은 순수하지 못한 나의 욕망이 투영된 상태이다. 나의 욕망을 스스로 해낼 능력이 못되니 누군가를 통해 이루려는 것이다. 이런 관계는 건강할 수가 없는 법이다. 정말 바람직한 관계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관계일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더 이상 바랄 바 없이 감사한 마음이 든다면 어떻게 그런 관계가 나쁠 수 있을까.

나 스스로는 사람에게 크게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다. 웬만하면 그 사람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면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안하다.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다. 기대가 없다보니 그가 무언가를 해내기라도 하면 그저 고맙고 감사한 마음도 든다. 내가 누군가에게 기대하지 않는 만큼 누군가로부터 기대를 받는 것도 거북하다. 기대는 상대의 욕망이다. 내가 그 수단으로 쓰인다는 것은 나를 잃어 버리는 것 같아서다. ‘기대했는데 실망’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렇게 얘기해 주자. ‘그건 네 생각이고, 이게 나야’.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관계를 이어갈 이유없이 “안녕히 계십시요”라며 떠나 버리는게 좋다. 떠날 형편이 못되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면 될 일이다. 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수용되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예수나 부처도 당시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는데내가 뭣이라고 모든 사람들에게 수용되길 바라겠는가.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느라 나를 놓치는 일도 없어야 겠지만 사람에 대한 나의 기대도 가능하면 내려놓는게 마음 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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