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이것도 인연인데

by 장용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라는 말이 익숙하다. 그런데 만남이 인연이 될 수 있을까. 이건 좀 다른 문제이다. 만남 자체는 인연이 될 수 없다. 이것은 물질계도 마찬가지이다. 물은 두 개의 수소원자와 한 개의 산소원자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면 수소와 산소를 통속에 넣어두면 그냥 물이 되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수소와 산소로 물을 만들고자 하면 통속에 넣고 가열을 해야 한다. 전혀 모르는 남녀가 연인이 되는 과정도 그러하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냥 스치고 지나가는 하나의 배경에 불과하다. 그 중의 한 사람이 나의 인연으로 발전하려면 하다못해 발을 밟는 사건이라도 일어나야 한다. 이처럼 만남은 인연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만남이 인연으로 발전하려면 둘을 연결짓는 사건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사건은 특정되어 있지는 않다.만남의 주체들이 명사라면 사건은 동사이다. 명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전성을 갖추었지만 동사는 다양한 행동을 수반한다. 그래서 인연으로 발전하는 만남은 몇 가지 단계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먼저 너와 내가 있고 둘을 연결하는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그 사건을 통해 이전에는 스치고 지나갔을 사람인데 서로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 다음이 중요한데 그렇게 인식한 상대방과의 만남을 이어가는 것이다.

좋은 인연이란 만남의 주체들이 서로 성장하는 관계일 것이다. 상생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상생하는 만남은 길고 오래가지만 한 쪽만 성장하고 다른 쪽은 힘겨운 만남이거나 만날수록 둘 다 늪에 빠지는 듯한 만남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인연이 오래 갈수록 좋은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만날수록 상처만 입는 인연이라면 좀 더 빨리 끝내는게 좋을 것이다. 사람들은 좋은 인연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원한다.좋은 인연이란 만날수록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는 인연이다. 상대가 나에게 주고 말고는 내 영역이 아니니 결국 내가 무언가를 줄 수 있는 인연이 좋은 인연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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