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에 날려 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눈이 내리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
잘 알려진 진성의 ‘안동역에서’라는 노래의 첫 소절이다. 무슨 심술인지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자꾸 만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에 웃음이 난다. 무슨 약속을 저렇게 멍청하게 했을까 싶어서다. 우선 저 약속은 애당초 지키기 어려운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장소는 특정되어 있지만 시간과 조건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첫눈이라고 하는데 적설량 기준으로 어느 정도 되어야 첫눈이라 할 것인가. 싸락눈처럼 금세 내리다 만 눈도 첫눈에 포함시켜야 할까. 그리고 대체 그 첫눈은 어디에 내릴 때를 기준하는가. 당연히 안동이라고 하겠지만 명시되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녀가 태평양 건너 뉴욕에라도 있다면 매시간 안동의 기상상황을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안동의 첫눈 소식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새벽부터 내린 눈이 무릎까지 덮일 때까지 과연 올 수 있을까. 이렇게 노래 한 소절을 들으며 이런저런 딴지 거는 상상을 하다 보면 은근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역시 나는 혼자서도 꽤 잘 노는 편이다.
한 때는 계획 세우기를 참 즐겨했다. 그런데 50대쯤 접어들어 계획 세우는 일이 다소 시큰둥 해졌다. 계획의 모순을 자주 경험했기 때문이다. 계획의 모순이란 이러하다. 계획을 세우는 동안에는 몸은 여기에 머물지만 마음은 이미 모든 것이 달성된 지점에 있는 듯한 즐거운 착각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계획 세우는 일도 상당한 정신적 피로를 수반하는 일이기에 계획을 세운 뒤에는 좀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든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길어지고 행동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이번에는 이전 계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전 계획은 휴지통에다 버리고 다시 새로운 계획을 짠다. 상황이 이러하면 허구한 날 계획 세우느라 날이 샌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게다가 계획대로 하더라도 상황이 중간에 변하여 계획대로 안 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잘 된다. 하지만 일이 중반을 넘어서게 되면 추진력이 점차 약해져 흐지부지되는 일도 많았다. 그나마 효과적인 방식이 일주일이나 길어도 3개월 안에 할 일 정도를 대강 얼개를 잡아하는 정도였다. 괜히 계획 세우느라 시간과 에너지 소모하는 일을 일부러 멀리한 면도 있다. 오히려 즉흥적인 끌림으로 다가섰던 일들이 유익한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들어 뭔가 자꾸 놓치고 있고 헛돈다는 느낌이 들게 되면서 다시 계획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가 봤더니 최근 내가 직장일 외에도 이것저것 시도하고 참여하는 일들이 제법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간에 체계를 좀 잡아야 될 것 같아 계획을 세우기로 하는데 이전과는 좀 다른 방식을 적용하기로 한다.
첫째, 계획 세우는 시간은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그 이상 넘어가면 계획 수립 자체에 빠져들어 계획을 위한 계획이 되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계획을 세우다가도 30분이 지나면 무조건 중단한다.
둘째, 사분면을 그려 그 안에다 집어넣는다.
*1 사분면은 “이벤트” : 일시적 일정에 반영할 일들
예) 결혼식, 행사일 등 그 시간에 내가 그곳에 있으면 되는 일들
*2 사분면은 “반복” : 계속 반복하는 일들
예) 아침 산행, 글쓰기, 학기 수업 등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할 일들
*3 사분면은 “프로젝트” : 다소 복합적인 일들
예) 책 쓰기, 자전거로 서울서 부산 가기 등
*4 사분면은 “아이디어 메모” : 메모 등을 기록
예) 불현듯 나타나는 아이디어 등 기록
셋째, 3년, 1년, 6개월, 3개월, 1개월, 1주 단위 구성
A4용지 한 장에다 사분면을 6개 구성하여 계획을 수립한다. 효과는 장기계획을 바라보면서 주간단위를 구성하기에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는 방향성을 유지할 수 있다. 1주에 한 장의 A4 용지를 들고 한 주를 보낸다.
넷째, 계획 수정을 마다하지 않는다.
불변의 계획은 없다. 계획은 상황에 따라 바뀌는 거다. 아마도 장기계획은 큰 변동이 없겠지만 단기계획은 수시로 바뀔 듯하다.
모처럼 계획을 세우는데 계획을 위한 계획이 되지 않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