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철학과를 권한 아빠

by 장용범

아파트 내 작은 상가 건물이 하나 있다. 주변에 활성화된 상권들이 많다 보니 정작 아파트 단지 내라도 학원이나 편의점, 배달 위주의 업종들만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는 상가이다. 그런데 최근 이 곳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1년 정도 장사하다 폐업한 반찬가게 자리에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기에 이번에는 어떤 업종으로 얼마나 가려나 했는데 특이하게도 무인점포 형식의 아이스크림 할인점이 들어선 것이다. 인테리어라 할 것도 없었는데 냉장고와 카메라, 카드 결제기가 전부였다. 왠지 이번에는 좀 될 것 같은 느낌이 왔다. 어제는 퇴근길에 그 가게를 들렀는데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늘 조용하기만 하던 1층 상가에 갑자기 작은 활력이 생겼다. 아이스크림 할인점 맞은편에는 주인의 인건비라도 나올까 싶은 정육점이 있다. 늘 주인장만 앉아 있고 손님 있는 걸 본 적이 없는 정육점이다. 어제는 아이스크림 한 통 들고 무인 결제기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는데 맞은편 정육점 주인을 보게 되었다. 그는 목을 길게 빼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부러운 듯 보고 있었다. 참 대조적인 광경이었는데 사람이 지키고 앉은 가게보다 무인점포에 더 많은 손님이 몰려드니 말이다.

언제부터인지 주변에 무인 방식이 늘고 있다. 작은 분식집에 가더라도 주문은 키오스크에서 내가 직접 결제하고 공항을 가면 비행기 탑승권을 직접 발권한다. 지문을 찍으면 출입문이 열리고 교통카드로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 고속도로 요금소는 하이패스로 그냥 지나가고 무인 자동차가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가면 앞으로 사람이 할 일은 뭔가 싶을 정도이다. 최근 회사 내 IT부서에서 진행하는 일이 하나 있다. RPA(Robotic Process Automation)라고 사무 업무 중 반복적이고 단순한 프로세스를 로봇 방식을 도입해 처리한다는 프로젝트이다. 이를테면 어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특정 프로그램에 접속하고 자료를 다운로드하여 가공 처리하여 전송하는 반복된 업무를 클릭 한 번으로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다. 작년에 RPA 도입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어 경영진에서 올해 좀 더 확대하기로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그 성과라는 것이 사람의 일이 줄었다는 것이고 크게 보면 회사 내 어떤 업무는 사람이 없어도 로봇으로 돌아가게끔 되었다는 것이다. 취준생들은 취업하려고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기업들은 사람이 필요 없는 방향으로 일을 진행하고 있다.

지방의 명문대학들이 올해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학의 입학정원보다 수험생이 적은 사태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구구조상 이미 예견되었던 상황이다. 그런데 교사가 되려는 임용시험에는 지원자가 몰려든다. 학교 수는 줄여야 하는데 교직에는 지원자가 넘쳐나는 형국이다. 교직이 정말 안정되기는 한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우리의 사고 체계는 과거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어디로 가야 할 지도 잘 안 보인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세상은 아닐 것 같다.

딸아이가 고3 때 전공에 대한 의논을 하기에 철학과가 어떠냐고 한 적이 있다. 그 후 아이는 학교 진학상담 때 아빠가 철학과를 언급했다고 하니 선생님이 상당히 어이없어했다는 말을 전해 주었다. 인문학의 위기라고들 하지만 나는 좀 다른 생각이다. 오히려 로봇과 인공지능이 일반화되면 인문학이 더 주목을 받을 것 같아서다. 우리나라에서 밥벌이는 어차피 전공 따라가는 경우가 드문 형편이니 알아서 하면 될 일이고 본질에 대한 탐구를 하는 철학이 꽤나 매력적으로 보여서 추천한 건데 졸지에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이상한 아빠가 되고 말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