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별일 없이 산다

by 장용범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을 가끔 보게 된다. 코로나 이전에 이태원에서 촬영한 것 같은데 좀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길거리 출연자들에 대한 공통질문으로 최근 고민스러운 게 있느냐고 물으니 이런저런 고민거리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한 검은색 피부의 프랑스 사람에게 동일한 질문을 했더니 그는 자신에게는 고민거리가 없다면서 ‘Life is beaytiful.’이라고 했다. 개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문화 탓인가 했는데 그것도 아닌 것이 그의 밝은 표정을 보면 지금을 즐기고 사는 듯한 낙천성을 보였다. 그런데 그의 고민 없는 조건들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가 않다. 부모님 잘 계시고 친구들도 잘 지내고 일도 그럭저럭 하고 있어 지금은 그냥 모든 게 잘 되고 있다는 것이다. 고민거리가 없다는 말을 너무 자연스레 하고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하니 질문자 유재석이 오히려 머쓱해한다.

개인의 긍정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짐을 어떻게 수용하는 가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때 주의할 점이 남들과의 비교이다. 나의 짐은 이렇게 무거운데 저 사람의 짐은 가벼워 보일 때 우리는 긍정적이기 어렵다. 장기하의 노래 가운데 ‘별일 없이 산다.’라는 노래가 있다. 가수의 표정은 아주 진지하지만 노래 가사는 다소 코믹하다.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나는 별다른 고민없다... 나는 사는 게 재미있다.” 우리는 상대와 대화를 나눌 때 뭔가 힘들고 어렵다고 해야 서로 신이 나서 누가 더 힘든지 경쟁하듯 얘기 할 텐데 별일 없이 살고 사는 게 재미있다는 사람에게는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두 대화를 비교해 본다.

A: 요즘 어떻게 지내? 코로나로 힘들진 않아?
B: 말도 마, 손님 발길이 뚝 끊겨서 죽을 노릇이야.
A: 그러게 나도 회사 조업시간이 줄어들어 이러다 회사 짤리는 건 아닌지 불안해.
B: 이게 언제쯤 끝날 런지
A: 그러게 말야. 이 시국에 LH공사 놈들 하는 짓거리 좀 봐. 경을 쳐야 해.
B: 그러게 가만 둬선 안 돼. 싹 잡아넣어야 해.

대개 이런 식의 대화에 익숙하다. 그런데 만일 대화가 이렇게 이어지면 어떨까?

A: 요즘 어떻게 지내? 코로나로 힘들진 않아?
B: 정말이지 요즘 사는 게 재미나고 살 맛 난다.
A: 뭐가 그리 재미난데?
B: 내가 건강하고 밥 잘 먹지, 아이들도 무럭무럭 잘 자라지 게다가 오늘은 날씨도 완전 봄 날씨잖아.
A: 어, 그래 ~.

부정적 소재로 하는 대화는 주거니 받거니 서로 이어갈 소재가 많지만 대화의 한쪽에서 지금 사는 게 재미있고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과는 딱히 대화거리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런데 부정적인 대화 한다고 지금의 상황이 좋게 달라질 것도 아니라면 그냥 내 기분이라도 밝고 가볍게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잖은가. 눈을 뜨니 살아 있고 병원에 가지 않을 만큼 건강하고 먹었으니 하루를 주리지 않았다. 당연한 것 같아 보이지만 이 세상에는 이런 생활도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 별일 없이 살기로 한다. 다가올 미래가 걱정되지 않느냐고?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진다면 아무 걱정도 없겠다는 말처럼 미래를 걱정한다고 크게 달라질 게 있을까? 그러니 굳이 나의 짐을 남과 비교할 것 없이 스스로 감내하며 별일 없이 재미있게 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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