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섬 같은 사람

by 장용범

더 이상 원하고 바라는 바가 없다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도 없지만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더 채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부자가 천국에 가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만큼 어렵다는 성경 구절이 있다. 천국이란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천국은 좋은 곳일 텐데 부자는 왜 들어가기 힘든 것일까. 살아가는데 별 아쉬움이 없는 사람에게 영혼의 갈증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좀 덜 하기 때문일까 싶다. 주여, 저는 지금이 딱 좋습니다. 더 이상 원하고 바라는 바가 없습니다. 저를 그냥 이대로 두십시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무언가를 더 욕구하게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의 마케팅 능력인지도 모르겠다.

20년 전 회사 선배 가운데 이런 분이 계셨다. 아침에 제일 먼저 출근하여 자신의 자리에서 클래식을 크게 튼다. 사용하는 PC는 당시 매킨토시라는 애플사의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고 퇴근 후 소주 한 잔 걸치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와 자신의 자리에서 한참을 앉았다 나가는 분이었다. 업무능력은 탁월하여 집중력이 대단했고 후딱 마치고 나면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쉬는 스타일이었다. 그분은 직장생활 2년을 남겨놓고 이 곳에서 하고 싶은 것은 다 했다며 사표를 내고는 통영의 사량도라는 섬에 집을 짓고 책을 한 수레 들고 들어갔다는 후문이 있었다. 당시 그분은 옆의 팀장이셨는데 나와 출근 순위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기억이 있다. 타인의 이해를 구하지도 않았지만 한 마디로 자신의 행동에 걸림이 없던 분이셨다. 직위가 아주 높은 곳까지는 가지 못했는데 그의 기행을 생각하면 이해도 된다. 직장생활에서 더 이상 원하고 바라는 바가 없으니 나머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좀 일찍 은퇴한 경우이다.

당당한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주변을 원망하거나 비난하지도 않고 어려움이 닥쳐도 스스로 감내하고 나아가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의 걸음에는 힘이 있고 그의 말에는 뚜렷한 가치관이 느껴진다. 자리에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기회가 되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만 그렇다고 주어지지 않은 자리에 기를 쓰고 올라 가려하지도 않는다.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는 다만 자신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갈 뿐이다. 한 마디로 너는 너의 방식대로 살아라 나는 나의 방식대로 살 테니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을 만들었던 자리가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여기서 그 사람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자리가 만든 사람은 자리가 없어지면 초라해진다. 하지만 먼저 사람이 있었고 그 후에 주어진 게 자리였다면 자리와 상관없이 그 사람은 바로 서 있는 것 같다.

엊그제 그분을 알고 계신 지금의 상사와 소주 한 잔 하며 그 시절을 추억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문득 그 선배님의 근황이 궁금하다. 여전히 육지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갈 수 있다는 섬이다. 어쩌면 그분은 섬 같은 분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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