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의 점심식사

몽생미셸 가는 길 72화

by 오래된 타자기


흘뢰리 쉬흐 앙델(Fleury Sur Andelle) 마을에서 때늦은 점심식사를 하려고 시청 앞에다 차를 주차시키고는 입구 유리문에 레이스 장식을 단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시청 앞에 제일 근사한 식당이었다.


하지만 간판에 새겨진 상호는 어느 모로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생경한 뜻만이 물씬 배어 나오는 문구였다. 독특한 건지 파격적인 건지 시청 앞이어서 그런 상호를 붙인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레스토랑 간판에는 ‘쓸데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장소(La Potinière)’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레스토랑 상호가 재밌다. La Potinière. 우리말 뜻은 ‘쓸데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장소’다.


주인장인 듯싶은 중년여성이 안내하는 대로 자리에 앉자마자 실내벽 여기저기에 매달려있는 레이스 장식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처음 주공아파트에 입주한 형 내외는 식탁을 집안에 들인 뒤, 식탁 위에 두터운 유리판을 깔고 유리판 밑에는 레이스 장식을 집어넣어 식탁을 꾸몄다. 아버지께서 여전히 기와집에서 옻칠한 밥상을 마주하고 계실 때였다.


레이스는 어릴 적 어머니께서 우리 가족이 베고 자는 베개에다 수를 놓은 자수와 함께 누이들 방에서 보던 것이 처음이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레이스가 벨기에의 브뤼게 골목길을 가득 채운 것처럼, 시골의 레스토랑 벽을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1]


나는 그 우아하고도 정교한 레이스 장식을 식사가 나올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내가 들려준 바로는 서울에서 자란 아내는 고등학교 시절 가사시간에 레이스 실습을 하였는데, 최고점수를 받을 정도로 레이스 뜨기를 잘하였다고 한다.


레스토랑 분위기를 살펴보니 바깥주인은 요리를 하고 안주인은 서빙을 하는 것 같았다. 전식으로 밤 수프를 시켰는데, 밤을 재료로 만든 수프가 독특하면서도 정갈하고 맛갈스러웠다.


밤을 으깨어 수프를 만들었는지 몇 개의 밤 알갱이가 온전히 수프 안에 담겨있었다. 밤으로 잼을 만든다는 건 알았어도 밤 수프 요리는 솔직히 처음이었다.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수프 요리는 온화한 분위기를 띤 레스토랑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이어 나온 본식은 명태요리였다.


명태는 분명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아침장에서 장만한 재료일 테고, 생선비린내를 완벽하게 죽인 입안에서 명태 살이 살살 부서지도록 기막히게 요리한 것이 일품이었다.


배고픔에 대한 절제를 강조한 듯한 산뜻함도 맘에 들었다. 시골 음식치고는 아주 훌륭한 점심식사에 만족할 즈음 안주인이 마지막으로 티라미수를 내놓았다.


겨울에 맛보는 냉기를 가라앉힌 디저트의 달콤함은 곧바로 에스프레소 커피를 주문하게 만들었다. 반 병짜리 와인에 정갈한 요리, 거기에 더해 디저트와 커피, 행복한 오후가 마침내 시작되고 있었다.


시골 마을의 소박한 점심식사가 성 금요일의 경건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금요일이었다.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2]의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둔 날이 금요일이었다. 로마 가톨릭 문화에 젖어있는 프랑스 역시 금요일을 성스럽게 맞이하는 고유한 전통을 지닌 나라였다.


이날만큼은 육식을 금하고 오로지 생선만을 식탁에 올리는 관습은 적어도 금요일만큼은 붉은 피가 흐르는 육식을 자제하고 예수의 수난과 고통을 되새기자는 뜻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 고귀한 자기 억제는 살생을 금하고 육식을 자제하며 더불어 전쟁까지도 피하고자 한 기독교 문명의 전통 가운데 가장 빛나는 부분이다.


프랑스 땅에 정착한 바이킹들까지도 이 계율을 지켰다는 점은 놀랍기만 하다. 정복왕 기욤이 주창한 ‘하느님에 의한 휴전’[3]으로까지 이어졌으니 말이다.


그게 1천 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이후로 서구인들은 금요일에도 전쟁을 벌였으며,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육고기를 섭취했음은 물론이고, 대혁명 이후로는 기독교의 고귀한 정수라 할 수 있는 성 금요일마저 잊어버렸다. 가톨릭은 국교로서 마침내 폐지되기에 이르렀고 대신 자유 평등 박애가 이들의 종교를 대신했다.


프랑스에 살면서 참 대단한 나라라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아직 이런 시골에까지 성 금요일의 식단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전율하고 만다. 이걸 도대체 뭐라 설명해야 하는가?


점심식사로 든 흰 살 생선요리는 적어도 이들이 지켜온 전통에 따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붉은 피가 줄줄 흐르는 쇠고기를 시킬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메뉴판의 ‘오늘의 요리’[4]는 분명 명태요리였다.


오늘날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연어 다음으로 제일 많이 섭취하는 어종이 명태다. 대한민국에서도 한때 국민생선으로 불리던 것이 북태평양에서 잡히던 명태였다.


어머니가 끓여준 매운탕을 먹을 때마다 입 안에서 살살 부서지던 생선살 역시 명태였다. 금요일과 명태요리! 내가 깨달은 또 하나의 기막힌 궁합이었다.


전형적인 노르망디 풍 건물. 햇볕 가리개용 파란색 덧문이 이채롭다.




[1] 레이스는 중세시대 때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다. 옷주름장식으로 레이스를 사용하였는데, 권력자이면서 동시에 부를 축적한 이들일수록 옷주름장식에 주름이 많이 들어간 옷을 입었다. 21세에 와서 자취를 감출 듯한 레이스 산업이 고급 여성 속옷 브랜드와 함께 부활한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다.


[2] 골고다란 말은 ‘해골산’이란 뜻이고, 십자가는 ‘유대인들의 왕’이란 죄명을 붙여 예수를 처형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사형도구를 가리킨다. 원래 죄수들을 처형하던 도구는 십자가 형태가 아니라 위가 평평한 티(T) 자 모양의 사형도구였다. 아래가 긴 십자가가 등장한 것은 죄명을 달기 위한 목적이었다. 조선시대 때 한강 가에서 가톨릭 신자들을 처형하던 장소가 절두산이었다. 얼마나 많은 목을 베었으면 한강 가에 잘린 목이 쌓여 산을 이루었다는 뜻의 절두산이 되었겠는가? 해골산과 절두산은 기막힌 조합이란 생각이 든다.


[3] 하느님에 의한 휴전(La Trêve de Dieu)은 11세기에 교회의 명령을 엄숙히 지키던 영주들 간의 휴전을 가리킨다. 수요일 저녁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모든 폭력적 사태를 금지했다. 종교적 축일에도 이를 금지시켰다.


[4] 쁠라 뒤 주흐(Plat du jour)라 부르는 오늘의 요리는 식당마다 그날그날 특선으로 내놓는 요리로써 가격도 싸면서 맛있는 게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