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73화
[대문 사진] 루앙 대성당 첨탑
앙델 계곡을 끼고 들어앉은 아담하면서 한적한 마을 흘뢰리를 한 바퀴 산책한 뒤, 다시 루앙으로 향한 도로로 접어들었다. 길로 들어서자마자 짙은 먹구름이 곧 비를 뿌릴 기색이다.
해양성기후는 눈 대신 비를 한량없이 퍼붓는다지만, 여행길에 만나는 비는 불행 중 불행이다. 운전하기도 곤란할뿐더러 사진 찍을 일도 영 가당치 않기에 더욱 그렇다.
다행히 루앙이 가까워지면서 서편 하늘이 맑게 개여 간다. 겨울햇살에 반짝이는 루앙 대성당 151미터 높이의 첨탑 또한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세상사는 맘먹은 대로 되는 법이 없다지만, 원하면 뜻대로 되는 것이 세상사 이치이기도하다. 내가 찾은 루앙 대성당은 늘 그렇듯 짙은 먹구름에 갇혀있거나 냉기 가득한 겨울비에 축축이 젖어든 풍경이었다. 아니면 겨울안개에게 포로가 된 채, 방문객의 발걸음을 쓸쓸히 되돌려 놓기 일쑤였다.
한 번 작정한 길은 계속 갈 수밖에. 이미 세월을 건너뛰어 여행을 감행하고자 결심한 사람처럼 안개나 비 따위에 여정을 포기할 만한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 차라리 점심때 우려 마신 따뜻한 차 한 잔의 열기로 여행길의 모든 낙담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더 현명했다.
드디어 루앙 시내로 접어들었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먹구름 탓으로 허공이 온통 회색빛이기는 했지만, 12월의 풍경으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세느 강변에서 대성당 쪽으로 꺾어 들어 차를 주차시킨 다음 남쪽 입구에 해당하는 정문(파사드) 쪽으로 다가선다. 이들은 대성당을 카데드랄(Cathédrale)이라 부른다. 참고로 모네가 화폭에 담은 루앙 대성당은 일반적으로 성당 입구에 해당하는 서쪽 정면 파사드다.
대성당 옆을 지나는 전찻길에서 바라본 성당 남쪽 파사드는 그야말로 웅대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건축사적으로 루앙 대성당은 여러 시기에 지어진 관계로 어느 시대의 양식으로 특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고딕 화염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란 점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당이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노르망디 건축양식이 혼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리 일대에서 번성한 고딕건축이 루앙 대성당에까지 영향을 끼쳤음은 자명하지만, 제단 위 천정에 올라선 채광탑과 서쪽 파사드 벽면을 가득 채운 조각상들만큼은 로마네스크 시기의 노르망디 건축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남쪽 파사드의 팀파늄(입구 세모 합각면)의 주제는 예수 수난과 부활이다.
상단의 조각상을 찬찬히 살펴보면 왼쪽부터 가롯 유다의 신호로 예수가 로마병정들에게 붙잡히고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치켜든 칼로 내리친다.
오른쪽으로 채찍을 맞고 있는 예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예수상이 연달아 이어지고, 이어 팀파늄 제일 위쪽 벽면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이를 슬퍼하는 여인들 그리고 요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조롱하면서 칼로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는 로마 병정과 슬퍼하는 마리아와 요한을 비웃듯 쳐다보는 로마 병정들 조각이 차례차례 채워져 있다.
팀파늄 하단의 조각은 십자가에서 끌어내려진 예수가 도식적으로 표현되었다. 예수의 텅 빈 무덤을 찾은 여인들과 이와는 대조적으로 잠들어있는 로마병정들의 조각상이 이어지고, 이어 무덤 속에서 부활한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을 만나 부활의 소식을 전하면서 마지막 사명을 전하고 있다.
문 한가운데의 기둥엔 예수가 서있고 벽기둥사이에는 제자들이 나란히 서있다. 그 위로는 단순하고도 수려한 장식의 장미창이 자리하며, 창 위쪽으로는 천상모후의 관을 쓴 성모 마리아의 대관식 장면이 조각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어느 여름날 남쪽 파사드가 보이는 광장 너른 터에 앉아 루앙 시가지를 노트에 담은 적이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루앙 대성당은 오로지 모네의 그림 속에서만 살아있었다.
여름의 기억으로부터 빠져나와 찬찬히 고개를 돌려 남쪽 파사드를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욥과 야곱과 요한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조각상 하나하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성당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의 상징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 갇혀 있을 때가 아니다. 내가 오늘 루앙 대성당을 다시 찾은 이유는 이제는 전설이 된 바이킹 롤로의 무덤을 찾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성당 저 안에 잠들어 있을 것이 분명하고, 나는 무덤 앞에서 이제는 전설이 된 그가 이룩한 노르망디 왕국의 역사를 되새겨 봐야 할 처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