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31화
[대문 사진] 파리 샤를 드골 공항
12월의 날씨는 거칠다 못해 사납기까지 하다. 무슨 대화인가를 나누려 했는데 화를 먼저 내는 사람 앞에서 할 말을 잃을 때처럼 망연해지기도 한다. 눈이 내릴 듯 말 듯한 날씨인데도 비가 내리는 해양성 기후는 말 그대로 ‘바다’ 때문이다. 프랑스엔 바다가 두 개나 있다. 대서양과 지중해, 바다가 2개씩이나 있으니 날씨가 바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까닭에 가끔 바닷가 해안 마을을 찾아들어 따뜻한 생선수프에 딱딱하면서도 바삭한 빵을 곁들여 먹으면 떠나온 저 대륙 너머의 고국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고국 대한민국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고산지대의 깎아지른 절벽 낭떠러지로부터 수려한 전망을 자랑하는 높고 낮은 산들과 산꼭대기 드넓게 펼쳐진 평원으로부터 리아스식 해안을 자랑하는 바다와 화산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은 산천 어딜 가나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이러한 지형적 특징 때문인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처럼 지역 특유의 특산물을 재료로 삼아 깊은 맛을 낸 지방 고유의 음식이 발달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눈 대신 비를 맞으며 비 피할 곳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겨울철 관광 비수기인데도 파리는 각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12월 한 달에만 샹젤리제 트리 점등식과 함께 화려한 거리거리에 밝힌 트리를 감상하러 몰려든 외국 관광객이 1천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연일 프랑스 방송이 흥분한 목소리로 그 열기를 전하는 걸 보니 내년 올림픽이 열리면 또 얼마나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올까 벌써부터 걱정이다. 교통대란에 쓰레기 대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고민거리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길을 걷다 보면 파리를 찾은 한국 남녀 여행객을 발견하는 일이 다반사다. 관광지만이 아니라 어딜 가도 한국 여행객들로 넘친다. 파리 여행이 그만큼 수월해졌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들은 파리에 와서 무얼 구경하고 싶어 하는 걸까? 프랑스가 어떤 매력이 있어서 이곳을 찾아온 것일까? 나 역시 여행자의 시선으로 물끄러미 지나가는 한국인 여행객들을 바라보며 길거리 무심히 흩날리는 낙엽과 같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추억 한 줌을 꺼내 든다.
1991년 첫 발을 디딘 프랑스 파리는 2023년 한국인 여행객들로 들끓는 파리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우선 파리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샤를 드골 국제공항 입국 심사대의 긴 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출입국 관리사무소 소속 공무원의 태도는 격세지감을 느낄 만큼 현격한 차이가 있다. 더군다나 출구에서 짐 검사를 하는 세관원의 태도는 지금과는 완연히 다른 마치 와서는 안될 곳을 온 것처럼 곧바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자연 생기게 만들 정도였다. 짐 가방이 2개만 되어도 “무슨 일 때문에 왔느냐?”, “혹시 일자리 찾아왔느냐?”, “숙소는 어디냐?”, “파리에 지인은 있느냐?”, “돈은 얼마나 갖고 있느냐?”는 둥 아주 곤혹스러운 질문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짐 검색이 장장 2시간을 넘을 때도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고양이가 쥐를 대하듯 여행자의 가방을 마치 먹잇감인양 샅샅이 뒤졌다. 가방 속에서 뭐라도 발견하면 “이것 팔려고 가져온 것이냐?”라고 속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말까지 쏟아냈다.
1991년 2월 출구로 막 나가려는 나를 붙잡아 세운 세관(Douane)원 두 명은 마치 내가 걸프 전을 피해 도망쳐 나온 이라크 난민이라도 되듯이 축구 공을 차듯 이리저리 돌림방을 놓았다. 호메이니가 등장하면서 격변의 혼돈상태로 돌입한 이란을 등지고 자유 평등 박애의 프랑스로 망명길에 오른 팔레비 왕조의 난민들이 그러했을까? 아니면 파리에서 체류할 때 사회주의에 감염되어 사회주의 민족주의자가 된 호찌민이 사이공의 함락을 목전에 뒀을 때, 메콩 강가에서 쌀국수를 들이켜다 허겁지겁 피난길에 오른 보트 피플 월남 인들이 그러했을까? 그들 모두가 ‘구원’의 땅쯤으로 여긴 프랑스의 출입국 관리소 직원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어떤 모멸감을 느꼈을까?
1991년 겨울 파리 샤를 드골 공항은 내가 꿈꾸던 프랑스가 아니었다. 파리 뉴욕 간 초음속으로 날던 콩코드 비행기가 샤를 드골 공항을 이륙하자마자 인근의 르부르제 공항 근처 구생빌 밀밭 한가운데 추락해서야 민낯을 드러낸 프랑스의 추악함이었다. 부르주아의 부침속에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마다 번번이 얼굴부터 들이미는 프랑스 저간의 속사정은 적어도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엄청난 숫자상의 외국인들이 가장 여행하고 싶어하는 나라의 1순위로 프랑스를 꼽는 걸까?
프랑스는 음흉한 이탈리아나 스페인보다는 솔직하기는 하지만, 영국이나 독일보다는 정직하지가 못하다. 택시를 타보면 안다. 말로만 친절할 뿐,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래된 인종차별의 편견을 극복하지 못한 이 불편한 나라는 독재자부터 난민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땅으로 여긴 것만큼은 틀림없으나 미국과 같은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자유 평등 박애의 이념만으로 형성된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념은 프랑스의 현실이 아니라 이상이었을 따름이다. 정직하게 일하고 세금을 낸 자만이 맘 편히 살아갈 수 있는 국가주의의 함정에 빠져있는 이른바 ‘선진국’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나라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참으로 풍요로운 나라이고 이 아름답기까지 한 나라에서 굵직굵직한 역사를 바꾼 걸출한 인물들이 태어났으며, 19세기 문화예술의 진원지였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를 비롯하여 고층 아파트 문화에 이르기까지 늘 새로운 것들을 발명해 낸 ‘발명의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20세기 후반을 화려하게 주도한 신생 선진국가와 같은 참신함을 지닌 나라는 아니었다. 다만 21세기 그 어느 나라와도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인류 최고의 가치인 ‘자연, 환경, 유대’라는 슬로건 앞에서 지구와 인류의 행복한 공생을 도모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국가임에는 틀림없다.
살다 보니 이들의 저력이 미더웠고 이들의 관용(톨레랑스)의 태도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으며, 유대(Solidarité)의 정신이 과연 무얼 의미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아가 2023년 샤를 드골 공항에서 대한민국 Republic of Korea 초록색 여권을 꺼내어 내미는 이들에게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말을 건네는 출입국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상냥한 미소가 결코 허세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건 가진 자의 아량이 아니라 있는 자의 베풂이다. 자랑스러운 조국을 가진 자들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이런 배려 속에 프랑스는 꼭 다시 여행하고 싶은 나라가 된다. 중국동포가 운영하는 민박집, 길거리 널려있는 무국적 음식을 파는 식당들, 싸구려 호텔의 빈대, 오나가나 소매치기, 사기꾼, 강도로 득실대는 관광지, 형편없는 화장실 수준, 허접한 선물가게, 비싼 물가의 악몽에도 프랑스는 지금까지 전 세계 시민들이 손꼽는 1순위 여행국가의 자리를 단 한 번도 다른 나라에 빼앗긴 적이 없다.
왜? 풍요롭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파리뿐만 아니라 프랑스 전역이 그러하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프랑스 인들이 사랑하는 문화예술에서 프랑스 인들의 개성이 잘 묻어나듯 프랑스 각지를 여행하다 보면 이들이 추구하는 ‘살아 숨 쉬는 독특한 문화의 역동성’이 얼마나 강렬하고 아름다운 지를 실감할 수 있다.
쓸쓸히 비가 내리는 12월, 빗속에 오늘의 출발지는 알바트로스 해안 한 복판에 위치한 생 발레리 앙 코(Saint-Valéry-en-Caux)로 정했다. 한 장의 그림엽서가 일러준 바닷가 어촌 마을, 그곳엔 폭우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 내 청춘, 충남 태안 당진의 안면도에서조차 더 멀리 떨어진 섬, 이름도 모르는 그 섬에서 폭풍우에 갇혀 바스라진 젊음, 그와는 판이하게 다른 어느 여름날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크림빛 바다, 오늘 내가 선택한 바다다! 그곳엘 가면 너무도 달콤하고 사랑스럽기까지한 내 프랑스에서의 청춘의 밀당마저 고스란히 묻어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