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33화
[대문 사진] 아몽 언덕에서 바라본 생 발레리 앙 꼬 마을
프랑스 북서쪽 대서양 연안, 이른바 이들이 알바트로스 해안이라 부르는 노르망디 바닷가 마을 생 발레리 앙 꼬(Saint Valéry en Caux)는 주민이 4천 명도 채 안되는 조그마한 어촌 마을이다.
마을이 현대사에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부터다. 망슈 해협을 끼고 영국과 프랑스가 나란히 이웃한 노르망디 지역에 독일군이 남하하자 이를 방어하기 위해 마을에 주둔해 있던 연합군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결국 독일군에게 항복했던, 이들에게는 정말 뼈아픈 기억이 생생히 묻어나는 2차 세계대전의 길이길이 회자될 전적지이기 때문이다.
전쟁 통에 조용하면서도 고즈넉한 어촌 마을인 생 발레리 앙 코는 마을의 70%가 파괴되는 전란을 피할 길 없어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되는 참상을 겪었다. 이때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막의 여우’라 불리는 롬멜이다.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진 독자들에겐 생경하고도 초현실적인 적군의 승리라 할 수 있다. 권선징악(勸善懲惡), 항상 선이 악을 물리치는 할리우드 영화의 문법에 익숙한 독자들에겐 이 반역사적 만행은 무력 전차부대를 이끄는 롬멜 사단의 승리로 귀결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걸 이들 프랑스인들은 ‘아픈 상처’로 규정하고 있다.
악몽은 성장을 멈추게 한다. 어린아이가 악몽을 꾸게 되면 ‘어른이 되려 한다’는 식의 위로를 건네지만, 아이들은 악몽에 시달리면서 악몽을 되풀이할 때마다 정상적인 사고를 멈추곤 한다. 악몽이 계속되면 아이는 결국 다른 현실 세계에서 ‘복수’를 꿈꾼다. 악몽은 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어른이나 아이나 할 것 없이 악몽을 꾸는 것은 곧 정신적 불안정 상태가 가중되어간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는 전쟁의 운명은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작은 마을을 엄습하면서 가중되었다. 그 이유는 생 발레리 앙 꼬 마을이 지닌 지정학적 조건 때문이기도 하다. 뒤에 후술하겠지만, 1930년 마침내 생 발레리 앙 꼬 마을을 통과하면서 프랑스 두 조종사가 대서양 횡단에 성공함으로써 마을은 파리 뉴욕을 잇는 중요한 항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영국을 잇는 주요한 뱃길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더해 2차 세계대전 시에는 연합군이 진을 치면서 남하하는 독일군을 저지하고자 시도했던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저 아득한 천 년 전에도 노르망디 공국의 일인자였던 정복왕 기욤(윌리엄)이 영국 정복을 위한 선단을 배치했을 정도로 전략적 요충지였을 뿐 아니라 백년전쟁 기간 동안에는 영국의 전쟁 물자가 수시로 드나들던 항구이기도 했다.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였던 이곳이 20세기에 다시 한번 불바다가 된 것이다.
1940년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 동안 계속된 폭격으로 인해 도심은 거의 파괴되었다. 연합군이 뱃길을 이용하여 영국으로 퇴각할 낌새를 눈치챈 롬멜은 6월 10일 인근의 항구도시 훼깡(Fécamp)을 포위했다.
세느 강 전선에서 퇴각을 거듭하던 연합군은 마침내 마지막 항구인 생 발레리 앙 꼬로 철수했다. 11일 롬멜은 마을과 항구에 대대적인 포격을 명령했다. 아직 퇴각할 기회가 있었지만, 밤안개로 말미암아 한밤중에 함선에 승선할 기회를 놓친 연합군은 끈질긴 저항에도 불구하고 12일 아침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그날 저녁 롬멜은 초저녁에 파괴된 도심 광장에서 연합군의 항복을 받아냈다. 롬멜은 제51 하이랜드 보병사단을 지휘하던 일러 사령관과 빅터 포츈 소장을 포함하여 12명의 연합군 장성들을 포로로 잡는 쾌거까지 이루었다. 그날 밤 롬멜은 아내 루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루,
이제 전투가 끝났구려. 적군 군단장 1명과 사단장 4명이 오늘 생 발레리 장터에 나타났는데, 나는 그들에게 항복을 받았다네. 참 멋진 순간이지 않은가!”
- 롬멜, 1940년 6월 12일.
사흘간의 쌍방에 의한 전투 그리고 이어진 폭격은 한 작은 마을을 그야말로 초토화시켜버리고 말았다. 묵묵히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마을 주민들에게는 날벼락 그 자체였다.
이념화된 역사는 독일군의 찬란한 승리가 아니라 1944년 독일군이 패전함으로써 해방을 맞게 된 마을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이 쌍방 간에 치러진 전쟁을 통해 겪게 된 참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때 죽어간 병사들의 영혼들은 어느 귀천을 맴돌고 있을 것이다.
역사에서 만일 이념을 제거한다면, 오늘날에도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러시아 간,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전쟁처럼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모호해진다. 문제는 이런 전쟁의 폭력의 모호함을 즐기는 이들에게 있다. 광기에 사로잡힌 폭력은 꼭 전쟁이 아니어도 사회 전반에서 행해진다. 우리는 분노한다. 그리고 심판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죽어간 영혼들은 금방 잊히고 또 다른 광기와 폭력을 마주할 따름이다. 이 되풀이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 인류가 이념화하여 ‘역사’라 지칭하는 ‘사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