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 빛 바다

몽생미셸 가는 길 132화

by 오래된 타자기


어느 화사한 봄날이었다고 하자. 그 해 봄날 나는 내 모든 운명을 걸고 있었다.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지도 어언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흘렀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나, 삶이나 할 것 없이 일상의 힘겨운 노력이나, 주변인의 삶 또한 경계에 대한 미결정적 확신 등 어느 것 하나 변한 것이 없는 상태였다. 아니 오히려 무책임한 어리둥절한 주변인의 삶을 느긋하게 즐기는 꼴이었다. 다만 이건 아니다, 아닌 것 같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둥의 자질구레한 번민과 회의만 교차하던 나날들이었다.


결정적으로 감각을 후벼 파고든 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의지조차 스스로의 관습화된 권태와 우울에 무참히 꺾여버리고 만 일상에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이율배반적 잡념만이 난무하는 일상에 갇혀 모두가 바쁜 거리로 나서는 시점에 차마 그들처럼 길로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하는, 어느 것 하나 새로 시작하지 못하는 자기 체념만 늘어갈 뿐인 삶.


그러다가 맞이한 2011년 봄, 봄은 약간은 불투명한 안개와 함께 찾아왔다. 안개 낀 아침은 화사한 봄밭을 예고해 주는 시(詩)였다! 나는 그렇게 ‘서울의 봄’과 ‘파리의 봄’을 함께 준비했다.



축축한 안개가 등을 떠미는 오후가 되면 찬란히 빛나는 햇살에 사물들마저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낸다. 밤안개와 달리 아침 자욱한 안개를 보고 있노라면 오늘 하루도 나무들마다 새 잎을 틔우면서 환한 기지개를 켜리라 희망을 읽곤 한다.


그런 봄날도 몇 주가 지났다. 뒤죽박죽 일상의 실타래를 어디서 어떻게 다시 풀어야 할지를 놓고 고민할 따름인, 안절부절못하는 가운데 또 몇 주가 덧없이 흘러갔다. 기필코 이 태연한 느긋함을 스스로 중단해야 하리라, 후회 없는 삶을 살아야 하리라, 온갖 기대에 찬 하루가 저녁마다 무릎 꺾인 절망감에 자리를 내줄 즈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내 평생의 반려자의 뒤숭숭하던 꿈자리가 어느 때보다도 화사하던 그날에 냉담자의 뻥 뚫린 가슴속에 시린 한겨울의 차디찬 바람 대신 훈훈한 봄기운이 가득 들어차던 날, 나는 나도 모르게 십자고상을 마주 바라보며 성호를 긋고는 “다시 걷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의 기도를 바칩니다!” 말을 잃은 사람처럼 소리 죽여 기도했다.


이로써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 얼마 만인가? 참혹하기만 했던 겨울이 끝나고 온갖 기대마저 꽁꽁 묶어놓은 겨울의 붕대를 풀어 젖히던 순간에 후회할 일은 많지만 들뜬 마음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것만이 기대를 앞선 그 해 봄날에 그래 다시 살아보는 거였다. 바람이 부니! 새롭게 일렁이는 바람에 기대어 한없이 추락한 삶을 스스로 일으켜 세우는 일만이 새롭게 마땅히 주어진 과제였다.


여행의 행선지는 그림엽서가 일러준 대서양 북서쪽 알바트로스의 해안 크림 빛 바다로 정했다. 파리에서 3시간 거리인 망슈 해협의 한 작은 어촌 마을까지 차로 달리는 동안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을 보는 건 덤으로 주어졌다. 바다까지 장장 150킬로미터 이어진 구릉길은 한없이 펼쳐진 들판을 지나고 작은 마을들을 거치면서 성숙한 봄날의 풍경을 한껏 펼쳐놓으리라는 기대마저 상상을 앞서갔다.


꼬 지방(Pay de Caux)의 봄날 풍경


대서양가의 작디작은 어촌 마을인 생 발레리 앙 꼬(Saint Valéry en Caux)에 이를 때까지 내 생애 단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구릉길은 설렘 반, 기대 반, 상상 반 온갖 그림들을 떠올려줄 것이다. 에움길 끝에 걸터앉은 바다! 도심의 유리창을 물들이는 아침노을에 반해 건물숲 사이 반짝이는 해가 떠오를 때까지 묵묵히 기다리는 인내심으로 허공에 떠오르던 바다를 비로소 만나게 되는 것이리라. 하여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그 크림 빛 바다에 영혼마저 풀어놓으리라. 영혼의 울림처럼 귓가를 맴도는 잔잔한 물살의 파도 또한 뜨거운 가슴으로 끌어안으리라.


나는 마침내 겨울을 이겨낸 것이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며, 부축 없이도 먼 길을 갈 수 있게 된 것이리라. 봄바다를 향해 달려가며 봄길을 걷는 사뿐 걸음걸이처럼 너울대는 파도를 되돌아보면 애잔한 것들일 뿐인 지난 삶의 추억하기조차 불편한 무상함마저 지워나갈 수 있으리라.


마을에 도착하여 앙리 4세 시대의 중세 풍의 가옥 가까이 차를 버려두고는 도로 표지판을 따라 걷는다. 발걸음이 향하는 마지막 지점 포구는 그처럼 가까이에 있었다. 하나뿐인 등대는 바로 보이는 곳에서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시린 바람을 맞고 있었고, 네덜란드 화가 종킨드의 그림 속에, 표지 등껍질이 벗겨진 역사책에 등장하는 작은 마을은 마을 문장이 일러주듯 푸른 바다에 뛰노는 돌고래 두 마리가 유영하는 코발트빛 바다를 마주하고 있었다. 아늑한 망슈 해협의 포근한 품 안에서 뛰노는 돌고래를 피해 이리저리 쏜살같이 도망치는 고등어 떼가 희부연한 물안개를 일으키는 검푸른 바다, 하구에 서자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먼 길을 돌아온 청춘의 물그림자가.


생 발레리 앙 코(Saint Valéry en Caux) 마을 크림 빛 바다엔 고등어 떼를 쫓는 돌고래들이 뛰어논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심의 70%가 잿더미로 변한 포구엔 서둘러 새로 채워 넣은 건물들로 가득하다. 너머에 바다가 있다. 자갈밭 해안으로 유명한 생 발레리 앙 코 마을의 크림 빛 바다, 끝없이 펼쳐진 한없는 바다가 거기 있다.


크림 빛 바다, 생 발레리 앙 코(Saint Valéry en Caux).


분필 같은 석회암이 용해되어 희부연한 색조를 띤 하늘색 바다! 생 발레리 앙 꼬 바다만의 특징이다. 하여 바다색에 반해 수많은 화가들이 몰려들었다. 르 아브르(Le Havre)에서 50여 킬로미터, 인상파 화가들의 요람이나 다름없는 르 아브르에서 그들과 섞여 종횡무진 바닷가를 누비던 종킨드 또한 어느 날 이 크림 빛 바다를 보기 위해 작은 마을까지 흘러든 것이리라. 네덜란드의 어둡고도 쓸쓸하면서 탁한 뻘밭과도 같은 잿빛 바다와는 달리 검푸름마저 억누른듯한 크림 빛 색조에 마음을 빼앗긴 탓이리라. 나 또한 한때 이 바다가 보고 싶어 얼마나 새벽잠을 설쳤던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찾아간 스위스 인터라켄의 아침 호반, 그 물빛을 잊을 수 없어 그렇듯 다시 같은 색조를 찾아 달려온 것이었다.


묵묵한 바다 앞에 서니 긴 겨울 동안 한없이 뒤척이던 번민의 물살마저 잔잔해진 느낌이다. 나는 수첩에 그렇게 적어갔다.


크림 빛 바다,
일상의 자질구레한 고민마저
삼켜버린 고마운 바다,
영원한 빛깔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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