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항구의 노트르담

몽생미셸 가는 길 134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생 발레리 앙 꼬 마을의 <안전한 항구의 노트르담 성당>


명분 없는 전쟁 통에 바다로 나간 어부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던 성당 한 채가 날아갔다. 마을 한복판, 일컬어 성당 광장(Place de la Chapelle)이라 부르는 곳에 자리한 한 작은 천주교회가 비 오듯 퍼붓는 폭격으로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천주교회는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바다로 나간 어부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던 교회였다. 성모 마리아께 기도하던 가족들의 애절한 기도 소리가 작은 성당의 귓돌마다 배어있는 교회가 통째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1962년 마침내 생 발레리 앙 꼬(Saint Valély en Caux) 시당국은 사라진 교회가 있던 터에 새로이 교회를 지을 것을 선언한다. 설계를 맡은 이는 210미터에 달하는 파리 몽파르나스 타워를 설계한 레이몽 로페즈(Raymond Lopez)였다. 프랑스 현대 건축가이자 신도시 설계자였던 그는 생 발레리 앙 꼬 시당국의 요청을 기꺼이 수용하여 예전에 교회가 있던 자리에 새로운 교회를 재건하는데, 그 교회가 이름하여 ‘안전한 항구의 성모 마리아 성당(Chapelle Notre Dame du Bon Port)’이다.


‘안전한 항구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란 뜻의 샤펠 노트르담 뒤 봉 포흐(Chapelle Notre Dame du Bon Port).


성모 마리아는 모든 뱃사람의 수호성인이었다. 로마 가톨릭의 전통에 따른 것이지만, 사실 뱃사람이 지닌 믿음은 저 아득한 유럽 신화와 잇닿아 있다. 우리 식으로 해석해도 대양은 어머니와 관련이 깊다. ‘물’은 만물의 근원이란 신화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걸 부정하는 이들은 광기와 폭력의 모호함을 즐기는 저 스스로 이 세상 유아독존 홀로 잘난 맛에 사는 인간들 뿐일 것이다. 그들 모순 투성이의 논리 아닌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그들에게는 그 어떤 신화나 상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벌거벗겨진 한 초라한 인간의 실존적 자기주장만이 난무하는 변증의 논리와 마주칠 따름이다.


로마 가톨릭의 4대 왕국이라 일컫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에서는 거의 모든 항구가 성모 마리아의 전설과 관련이 깊다. 폭풍우 치는 바다에서 바닷길을 따라 항해하다가 무사귀환을 빌기 위한 적당한 도구가 필요했으리라. 영성의 시대였던 중세 시대에 성모 마리아에 대한 숭배가 항구를 중심으로 널리 퍼진 것도 온전히 뱃사람의 운명이 가엾고 고달팠기 때문만이 아니라, 대양은 모성을 상징하듯 자애로운 어머니의 보살핌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란 것이 정설이다.


1904년 5월 12일 파리 인근의 몽후즈(Montrouge)에서 태어난 레이몽 로페즈는 평생을 신도시 개발을 꿈꿨던 르 꼬르뷔지에의 연장선상에 자리한 현대 건축가다. 절대 권력을 등에 업고 찬란한 도시 개발을 꿈꿨던 르 꼬르뷔지에와 같이 레이몽 로페즈 역시 신도시 개발에 목말랐던 도시 설계자였다. 건축을 통한 혁명을 부르짖은 르 꼬르뷔지에에 비하면 레이몽 로페즈는 한결 온건주의자 풍모를 지녔다는 것이 이 두 건축가의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일 것이다.


레이몽 로페즈는 증기기관차가 멈추지 않고 질주하는 바람에 기차 역사 정면을 뚫고 나온 ‘몽파르나스 기차역 참사’로 인해 몽파르나스 지구 전체를 재개발하고자 파리 시가 추진한 도시 리모델링 사업에 뛰어든 건축가였다. 이때 레이몽 로페즈는 파리 몽파르나스 기차역 앞 광장에 높이 210미터 최첨단 빌딩을 세우는데, 당시 에펠탑 다음으로 높은 마천루 건물이었다.


이 비즈니스 건물은 외관이 철제 빔에다 불투명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허공에 우뚝 선 세련된 검은색 빌딩으로 화려하게 조명 받았다. 파리 최고의 전경을 즐길 수 있는 파노라마 전망대도 설치되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에펠탑과 함께 파리의 상징적 건물로 손색이 없는 몽파르나스 첨단 빌딩은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파리에 어울리지 못한 채 주변 건물들과도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한 ‘꼴불견 건물’로 남아있다.


1970년대 세워진 몽파르나스 빌딩은 새 천년을 맞이하여 꼴불견 건물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하여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다.


몽파르나스 타워를 설계한 그가 대서양 연안 조그만 어촌 마을에 지은 교회가 ‘안전한 항구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란 뜻의 ‘샤펠 노트르담 뒤 봉 포흐(Chapelle Notre Dame du Bon Port)’다. 지중해 바닷가 마을 로크브륀 캎 마르탱(Roquebrune Cap martin)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공동묘지에 잠들어있는 르 꼬르뷔지에가 롱샹 성당을 지었듯, 그 역시 대서양가의 한 작은 마을에 교회를 세운 것이다.


성당 건물의 기초는 인근의 생 레제흐(Saint Léger) 성당에서 운반해 온 사암으로 다지고 그 위에다 나무 서까래를 이용하여 건물의 뼈대를 세우고는 벽면을 온통 스테인드글라스로 마감하였다. 이 독특하고도 모던하기까지 한 현대식 교회 건축물은 그 아름다운 색유리창의 바리에이션으로 인하여 저 파리 시테 섬 한복판에 벽면을 온통 스테인드글라스로 채운 생 샤펠(Saint-Chapelle)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천국의 아름다움을 상정한 파리 생 샤펠과는 달리 샤펠 노트르담 뒤 봉 포흐는 파란색과 녹색 톤의 모던한 아름다움을 표방한 참으로 현대적인 스테인드글라스라 할 수 있다. 파란색 녹색, 이 두 색조가 ‘바다’를 상징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샤펠 노트르담 뒤 봉 포흐(Chapelle Notre Dame du Bon Port) 스테인드글라스.


시골 교회의 소박하고 정결하기까지 한 아취를 건물 전체에서 느끼기에 충분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서쪽 파사드 정면 입구로 들어서면 제단을 향해 펼쳐진 스테인드글라스의 푸른 바다에 홀리듯 빠져들고 만다. 이 시선을 압도하는 색유리창의 파노라마는 성당의 벽면을 온통 뒤덮고 있다. 제단 바로 뒤쪽 유리창에 새겨놓은 흰옷을 입고 서있는 인물의 추상은 아마도 뱃사람들을 구원해 주는 성모 마리아일 것이다.


성당 제단 뒤 벽면에는 배 조형물들이 놓여있다.


현대 건축가의 결기마저 느껴지는 교회 건축물은 그래서 아름답다. 지붕은 슬레이트로 이어놓았는데, 교회 내부에서 올려다보면 천장은 배를 거꾸로 엎어놓은 형상이다. 노르망디 교회 건축물에서 흔히 발견되는 바이킹의 건축술이다. 현대 건축가이지만 오래된 건축술을 도외시하지 않았다는 치밀함마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건물도 지을 수 없다. 베르사유 궁전을 완성한 건축가 르 망사르에게 루이 14세 태양왕이 일갈하는 듯하다.



저 이탈리아 건축가들이
어떻게 건물을 짓는 지를
잘 보고 익혀
프랑스다운 창조적인 건축물을
지어보도록 하여라.



파리에 세계 최초로 건축학교, 조경학교, 미술학교, 연극학교, 음악학교, 무용학교 등을 세운 태양왕 루이 14세 다운 말일 듯싶다.


그로부터 400년이 흐른 20세기에 프랑스 건축가는 자신의 영성에 가득 찬 공간을 한적한 바닷가에 세운다. 나는 잠시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제단 앞에서 성호를 긋는다. 종교적 건축물마저도 아름다움으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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