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을 향한 꿈 서쪽을 향한 꿈

몽생미셸 가는 길 137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생 발레리 앙 꼬 아몽 언덕에 세워진 파리-뉴욕 대서양 횡단 비행 성공 기념 조형물


아내는 잠잘 때 늘 머리를 동쪽으로 향한다. 침대 머리맡이 동쪽을 향해 있는 건 물론이다. 잠 속에서조차 아내는 한 마리 새가 되어 동쪽으로 날아가는 꿈을 꾼다.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8,99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그녀가 태어난 서울이 있다. 가끔씩 파리 몽파르나스 아파트 거실 유리창 앞에 서서 북동쪽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를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는 아내를 발견하기도 한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2012년이었으리라. 5월 1일 노동절 아침이 밝았다. 봄은 한적한 휴양지 언덕의 들풀을 더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물들여갔다. 진초록빛 사이에서 샛노란 들꽃 또한 무성하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지도 완만하지도 않다. 왼편으로 검푸른 바다를 끼고 오르는 길 중간쯤에는 마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휴지(休止)마저 마련되어 있다. 나는 그곳 바람의 발코니에서 바다를 내려다본다. 가까이에 크림 빛 바다가 먼발치로는 검푸른 바다가 사이좋게 나란히 일렁인다. 바람을 등지니 마을이 보인다. 한적한 분위기에 갇혀있지만 마을은 전혀 쓸쓸한 분위기가 아니다.


알바트로스 해안 석회암 단애가 끝 간 데 없이 이어지고 있다.
언덕을 오르는 길은 가파르지도 완만하지도 않다.
잠시의 휴지(休止), 그 짧은 달콤함에 빠지다.


드디어 언덕에 올라섰다. 느닷없이 방문객을 맞는 기념비, ‘마침내 대서양을 횡단한 두 조종사’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다.


생 발레리 아몽 언덕에 세워진 파리-뉴욕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두 조종사 코스테와 벨몽트를 기리기 위한 기념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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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발레리 아몽 언덕에 세워진 1930년 파리-뉴욕 간 대서양 횡단 비행 성공을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


1927년 5월 8일 파리 르 부르제 공항을 출발한 두 조종사가 몰던 비행기 <흰 새(White Bird)>는 끝내 대서양을 건너지 못한 채 에트르타 앞바다 상공에서 실종되었다. 뉭쥬세흐와 콜리, 이 두 조종사의 파리 – 뉴욕 대서양 횡단의 꿈은 그럼으로써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1930년 디외도네 코스테(Dieudonné Costes)와 모리스 벨롱트(Maurice Bellonte)가 몬 비행기 <브르게 물음표(Breguet Question Mark)>는 마침내 파리 르 부르제 공항을 이륙하여 생 발레리 앙 꼬 마을을 지나 뉴욕 비행장에 안착했다. ‘흰 새(화이트 버드)’는 실종되었지만, 모두를 궁금하게 만들던 ‘?(Question Mark)’는 드디어 파리 – 뉴욕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Avion Breguet, Le Bourget.jpg 파리 르 부르제 공항 항공 박물관(Musée de l'Air et de l'Espace) 전시장에 전시 중인 브르게 19.


디외도네 코스테와 모리스 벨롱트, 이 두 조종사가 몬 비행기는 억만장자였던 시계 제조업자 루이 부르게(Louis Breguet)의 손자인 루이 샤를 브르게가 제조한 비행기다. 두 조종사는 여러 차례 시험비행 끝에 특별히 개조된 브르게 19(Breguet XIX Question Mark)를 몰고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브르게 비행기는 프랑스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어린 왕자』를 쓴 생텍쥐페리가 몰다가 지중해 상공에서 행방불명된 비행기이기도 하다.


유로화로 바뀌기 전 프랑스 프랑화 지폐에 담긴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Saint Exupery)가 몬 비행기 브르게(Breguet) 14,


“그들이 탄 비행기는 600 마력의 이스파노 – 쉬자(Hispano – Suiza) 엔진을 장착하고 5천 리터의 휘발유를 실을 수 있어 9천 킬로미터 이상을 비행할 수 있었다. 1930년 8월 31일, 때마침 대서양 상공의 날씨도 좋았기에 두 조종사는 역사적 대서양 횡단 비행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몇 대의 작은 비행기의 호위를 받으며, 커다란 빨간색 브르게는 활주로에서 1분 동안 질주한 후 힘차게 이륙했다. 날아오른 비행기는 북쪽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오전 10시 50분 프랑스 해안을 가로지른 후 생 발레리 앙 꼬 마을 앞바다를 건넜다.


이제부터 두 조종사는 육지와 연락을 유지하기 위해 라디오만 장착한 채 대서양 상공을 비행한다. 오후 1시 15분 두 조종사가 몬 비행기 <물음표>는 영국 해안을 지났고, 오후 1시 30분에는 아일랜드 해안마저 통과했다. 비행기는 항로를 유지했지만, 곧 기상악화로 큰 교란에 부딪혀 속도가 상당히 느려진 상태였다. 힘든 밤을 보낸 후, 9월 1일 아침 날씨가 다시 좋아져 오전 10시 핼리팩스 만을 통과했다. 드디어 비행기는 미국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오후 11시 18분, 비행기는 마침내 뉴욕의 커티스 피엘프 비행장에 착륙했다. 그들이 몬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을 지켜보기 위하여 그곳에는 수많은 군중이 두 조종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39시간의 대서양 횡단 비행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1]


뉴욕 맨해튼의 환영 인파에 둘러싸인 두 조종사 벨롱트와 코스테.





[1] 웹 매거진 <이미지를 통한 역사 읽기(L’Hisoire par l’Image)>(2016년 3월)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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