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애에 노을이 물들다

몽생미셸 가는 길 138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생 발레리 앙 코 시청 홈페이지 메인 화면


새해 벽두에 글을 쓴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커피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커피에게도 향이 있겠지만, 막힌 코는 들숨으로도 향내를 맡지 못한다. 섣달그믐 밤이 새도록 마신 와인 탓이다.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뇌리 속에 종교적 믿음과 역사적 신념마저 구분 못하는 아우성만이 메아리친다.


늘 죽음을 두려워했다. 죽음의 그림자는 그렇듯 늘 나를 뒤쫓고 있었다. 모든 것이 소멸하고 말리라는 불안이 젊음을 갉아먹고 그것도 부족하여 인생 전체를 공포로 물들였다. 청춘을 밑돌던 애잔한 슬픔들, 하다 보니 풍경조차도 애잔한 슬픔이 묻어나는 풍경만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2020년 마지막 밤, 아니 2021년으로 막 들어서려는 찰나, 새벽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마법과도 같이 섣달그믐에 내가 살고 있는 파리 몽파르나스 지구 가로등불이 일제히 꺼졌다. 약 30분간의 정전 상태, 암흑만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순간 나는 오로지 “무슨 일이지?”, “저쪽은 환한데, 왜 이곳만 전기가 나갔지?” 하는 생각만 들었다. 몇 시간이 채 흐르지 않은 뒤, 그리운 고국에서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그러나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어머니의 담담한 목소리엔 참담함만이 묻어났다.



새벽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죽음은 사람의 운명을 되돌리는 힘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와의 추억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고고학자 같던 내 처음의 의도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운명은 무산자의 꿈같은 덧없는 것이었다. 다만 그때 아파트 유리창으로 흘러내리는 건 눈 대신 내리는 비가 아니라 눈물이었다.

펑펑 울었다.



아이처럼,
어른이 되다 만 아이처럼 울기만 했다.



유리창 가득 눈물로 흘러내리던 겨울비는 어느새 동쪽 허공으로 흥건히 번져만 갔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느닷없이 생애 최초로 찾은 바다는 대천 해수욕장 앞바다였다. 무슨 연유인지 아버지는 홀로 고사리 같은 내 손을 이끌고 대천 앞바다로 향했다. 바닷가에서 사나흘 묵으며, 해수욕도 하고, 밤늦은 시각까지 해수욕장 모래밭에서 펼쳐지던 공연도 아무 생각 없이 지켜보고, 남이 빨아먹던 말린 전복을 얻어온 아버지가 손에 쥐여주자 망설임 끝에 쓰디쓴 전복을 물어 뜯으며 짜디짠 바다를 난생처음 경험했다. 이후로 짜디짠 바다를 찾아갈 때마다 쓰디쓰고 외로운 기억이 떠올랐다. 왜 그때 아버지는 바다를 갑자기 보고 싶어 했을까? 어머니도 없이, 형제들도 마다하고 내 어린 손만을 이끌고 바다를 찾아가야 했던 것일까? 이유가 있다면 대체 어떤 연유에서였을까?


알베르 까뮤의 『이방인』을 읽던 시절, 바다를 향해 부모 집을 가출한 중학생이던 한 아이는 그가 그토록 바라보고자 했던 동해바다 해안선 끝에서 일렁이는 파도도, 떠오르는 아침 해도, 시원하게 목젖을 쓸어내리는 바닷바람도, 허공을 자유롭게 나는 갈매기도 어느 것 하나 맘에 와닿지 않았다.



맘에 차지 않는 바다



이후로도 짜디짠 바다를 찾을 때마다 쓰디쓴 기억밖에 없다는 사실을 점차로 깨달아갔다. 맘에 차지 않던 바다. 카뮈의 『이방인』에서 누군가가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사회주의 혁명사』로 이전한 청춘의 부질없는 감수성은 서해 바다에서 마주한 저녁노을과 함께 그나마 산산이 바스러지고 말았다. 다만 그때 그 시절의 바다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강한 자의식만이 앞길을 번번이 가렸을 따름이다.


살아생전 아버지는 할머니 묘소를 찾으실 때마다 안경점에서 새로 구입한 돋보기를 할머니 무덤에 남몰래 묻어두곤 하신다는 걸 뒤늦게 서야 알아챘다. 그 눈물겨운 노력조차 아버지만의 어머니를 무덤에서 환생하게 만들 수 없다는 걸 아버지는 깨달아 가고 계셨지만,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아버지의 행동은 당당하게 가족사의 이념으로 자리 잡아갔다.


이념을 신념화하면 가족의 인생도 바뀔까? 그건 종교적 믿음과 어떤 면에서 같고 다른가? 할머니의 기구한 인생을 되돌려보고 싶어 했던 아버지는 중, 고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교사였다. 내 인생의 유일한 선생이기도 했던 아버지는 이곳 파리까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다 2020년 섣달그믐 밤, 중국 우환에서 발생한 코로나와 함께 아버지의 서사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막을 내린 게 아니었다. 아버지의 기일(忌日)마다 말로 이루 다 형용할 수 없는 서사는 신화처럼 내 의식 속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왜 그때 아버지는 서해바다로 나를 데려가셨을까?


Sea ouest.jpg 여행수첩 속의 바다


생 발레리 앙 코 앞바다에 해가 지기 시작한다. 아몽 언덕에서 내려와 마을을 쏘다니다가 바닷가로 향한다. 홀로 외로이 서 있을 법한 등대 너머로 해가 기울 것이다. 조만간 마을은 저녁식사 준비로 분주해지겠지. 들썩이는 마을 분위기와는 달리 겨울바다는 인기척조차 없다.



저녁 해가 수평선으로 기울면 밝게 빛나던 희디흰 석회암 단애마저도 주황빛으로 변해갈 것이다. 어설픈 한낮 대기에 갇혀 희디흰 빛만을 토해내던 싸늘하고도 창백한 낯빛이 주황빛 저녁노을 속에 본연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까지는 단애를 마냥 바라보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숨 고르며 떠올린 생각에 마침표를 찍는다.



해가 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저 텅 빈 바다에 일렁이는 물살뿐.



해가 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저 텅 빈 바다에 일렁이는 물살뿐.


어쭙잖은 한낮 열기에 휩싸인 들뜬 청춘이 아니라면, 빛의 소멸 앞에서 망연히 마주하고 선 늘그막 한 생(生)에 대한 통찰이 마지막 섬광을 발하는 순간을 마저 바라봐야 하지 않겠는가. 저 붉게 물드는, 마치 저무는 태양빛이 갈무리해 가는 대낮 들뜬 인생의 마지막 형용까지도 처절히 지켜봐야 하지 않겠는가.


알바트로스 해안의 노을


인생은 이미지로만 남을 수도 있다. 인생 본연의 모습을 한 장의 사진이나 그림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모습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 건 ‘세상 끝으로 가라!’ 청춘에게 메아리치던 메시지에게로 되돌려진다. 그때 그 음성은 무얼 의도한 메시지였는가? 지금은 과연 무얼 상징한 초혼의 울림으로 해석해야만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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