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156화
[대문 사진] 노르망디의 초가집 농가, M-A. 티에리 사진
이 글을 쓰는 지금 파리에서는 난리가 났다. 프랑스 전역에서 몰려든 농업용 트랙터들이 수도 파리로 진입하는 모든 간선도로뿐만 아니라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항구도시 르 아브르도 마찬가지다. 시장 에두아르 필리프는 축산농가를 찾아 농부들의 애환에 귀기울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오늘날의 농업은 1970년대 프랑스 철강산업과 닮았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뛰어난 주력 사업인 농업이 사라지고 경쟁에 짓밟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프랑스 농업이 힘과 자부심의 원천으로 남을 수 있도록 싸워야 합니다.”
올림픽을 앞둔 2024년 정초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노란 조끼(Gilets Jaunes) 시위 때의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일부 농민들은 노란 조끼 운동 참가자와 동일시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자신들이 불평등에 맞서고 엘리트들의 지배에 도전하는 전국적 투쟁의 일부라고 여긴다. 다른 농민들은 생각이 다른데, 한 농민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우리는 그들과 다릅니다. 우리는 복지 수급자가 아니고 ‘농업’이란 우리 스스로의 직업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입니다.”[1]
찰리 킴버는 프랑스 농민 시위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고 진단한다.
“프랑스 농업에 여전히 많은 사람이 종사하고 있지만 대다수는 돈을 별로 벌지 못한다. 프랑스에는 농민이 70만 명 이상 있고 그들은 농장주일 뿐이지 노동자는 아니다. 참고로 영국에는 농민이 10만 명 있다. 프랑스에는 농장이 45만 6000개 있고 평균 크기는 69헥타르이다. 1헥타르는 축구장만 한 크기이다. 그러나 69헥타르는 평균값이고 25헥타르 이하의 영세한 농장도 많다. 그런 농장 수입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프랑스 농장의 절반 이상은 유럽 연합(EU)의 보조금 없이는 도산할 처지에 있다. 그렇지만 보조금의 80퍼센트는 규모가 가장 큰 상위 20퍼센트의 농장 소유주들이 가져간다. 프랑스 국민 평균은 14.5퍼센트인데 비해 농민 빈곤율은 18퍼센트이다. 농민 소득은 지난 30년간 평균 40퍼센트가 줄었다(농림부 자료).
유제품 대기업 락탈리(Lactalis)의 최고경영자 에마뉘엘 베스니에(Emmanuel Besnier)는 프랑스에서 부유한 인물 가운데 상위에 꼽히는 인물이다. 포춘은 그의 재산이 256억 달러[34조 원] 이상일 것으로 추산한다. 프랑스 낙농업자의 연소득은 평균 2만 6000유로[3800만 원]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농민 약 20만 명은 2026년에 은퇴 연령에 도달할 예정인데 연금 수령액은 한 달에 약 410유로[60만 원] 가량이 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농민의 자녀가 농사일을 이어 가길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농민이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농사일을 계속하거나 농장 문을 닫을 때까지 죽도록 일해야만 한다. 주 70시간을 일하면서도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는 수준이다. 농장이 도산하면 농업 대기업들이 그 땅을 집어삼킨다.”[2]
“프랑스의 농업은, 유럽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농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소규모 또는 애처로울 정도로 영세한 생산자도 많다.
시위 장면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들을 보라. 거기에 동원된 경운기는 대기업이 사용하는 거대 중장비와는 전혀 다르다. 많은 경우에 무척 낡았고 거의 수명이 끝나 가는 듯 보인다.
시위의 중심지인 프랑스 남부는 기후 변화로 가장 크게 타격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비록 많은 농민은(다른 산업에서는 움직임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왜 기후변화 문제로 행동에 나서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신자유주의자 에마뉘엘 마크롱이 이끄는 정부는 대단히 조심하면서 공감을 크게 표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85퍼센트 이상이 시위를 지지하고 있다.“[3]
이 말에 화답하듯 르 아브르 시장 에두아르 필리프는 다음과 같이 명료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농부는 농사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르 아브르는 노르망디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도시다. 그러나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목초지가 대부분이고 이들 목초지에서 키우는 젖소들 덕분에 프랑스에서 유제품이 제일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 노르망디다. 고급 식당에 가면 내놓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는 이지니(Isigny) 버터가 노르망디 산이며, 슈퍼에서 제일 자주 눈에 띄는 프레지당(Preésident) 브랜드 표시가 붙은 일반 소비자용 버터나 꺄망베르 치즈 또한 노르망디에서 생산된다. 낙농업 천국인 노르망디를 대표하는 르 아브르 시장의 말 한마디는 프랑스 농업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결국 2월 2일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국무총리 자리에 앉힌 34살에 불과한 가브리엘 아탈은 자신의 농업정책이 잘못됐다고 시인했다. 기존의 농업정책을 재검토하고 농민들을 위한 새로운 정책을 내놓겠다고도 약속했다. 그러자 트랙터를 몰고 수도 파리로 향한 모든 도로를 차단하고 시위를 벌였던 농민들은 족쇄를 풀고 시위도 멈췄다.
농업대국 프랑스, 낙농업 최대의 요람인 노르망디 르 아브르에서 발이 묶인 나는 호텔방에서 뒹굴고 있다. 날이 밝으면 <앙드레 말로 현대미술관(Musée d'Art moderne André-Malraux)>을 찾아야 할지 아니면 고속도로가 뚫렸는지 확인해야 할지 난감하다. 길로 나서는 순간 갑자기 혼란스러운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 읽어가던 지역신문을 한쪽으로 밀쳐 두고 창밖을 바라본다. 밖은 아직도 어둠이 지배하고 있다.
[1] 찰리 킴버, <프랑스 농민 투쟁은 좌와 우, 어디로 향할 것인가?> 2024년 1월 30일 자 <노동자 연대>에서 인용.
[2] 위의 기사에서 인용.
[3] 같은 기사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