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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래된 타자기 Mar 30. 2024

다가올 여름을 기다리며

몽생미셸 가는 길 158화


[대문 사진] 르 아브르 여름 축제를 알리는 홍보물 메인 화면


어느 여름날 오후였다. 늦은 점심을 들고 에트르타로 향한 길로 들어서서 오귀스트 페레가 완성한 성 요셉 천주교회를 지나 백사장 해안길로 접어들었을 무렵이었다. 알바트로스 해안의 단애가 눈에 아른거리던 그 순간 웬 컨테이너를 쌓아 올린 설치조형물이 눈앞을 가로막고 나섰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조형물을 한참 동안 올려다보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뱅상 가니베(Vincent Ganivet)라는 예술가가 세운 카테나 컨테이너(Catène de Containers) 조형물이었다.


르 아브르의 여름 축제(Un été au Havre)를 위해 프랑스 예술가가 설치한 조형물인 카테나 컨테이너.


르 아브르 항구 인근 해안가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한 조형물은 내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을 뿐만 아니라 그 조형물이 고속도로상에서 늘 보던 화물 컨테이너 트럭에 실린 수출입 상품이 들어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대형 컨테이너란 점에서 더욱 놀라웠다. 물론 지구상 곳곳에서 이 대형 컨테이너가 조립식 주택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특이해 보인 것이다. 아 이런 예술품도 있구나 하는 것이 그때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2017년 르 아브르 항구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뱅상 가니베가 설치한 조형물은 두 개의 아치로 배열된 다채로운 선적 컨테이너로 구성되어 있다. 높고 가파른 21개의 컨테이너로 구성된 아치 중 하나는 15개의 컨테이너로 구성된 더 작고 평평한 아치를 형성한다. 컨테이너의 모양과 색상은 마치 커다란 빌딩의 블록을 차용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조각품의 무게는 288톤, 높이는 28.5미터에 이른다. 지지대가 없으며 1882년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가 구현한 쇠사슬, 즉 체인의 원리를 이용한 체인의 힘과 장력이 활을 지지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컨테이너 앞에 붙는 카테나(Catena)라는 용어는 라틴어 catena(‘체인’이란 뜻)에서 유래했으며 컨테이너 체인을 가리킨다. 이는 건설공사에서 사용되는 역사슬의 원리에 대한 이중적인 암시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컨테이너와 궁극적으로 일맥상통하는 항구라는 수출입 물품의 공급망에 대한 암시를 이중적으로 뜻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특이한 모양, 크기와 눈에 띄는 위치로 인해 2017년 5월 27일에 개장한 설치조형물은 이제 르 아브르의 랜드 마크가 되었다. 2001년에 파리 국립현대미술학교(Ecole des Beaux Arts)를 졸업한 예술가 역시 프랑스가 자랑하는 현대 미술의 가파른 길을 홀로 묵묵히 걸어가고 있듯이 보인다.”


이상이 르 아브르 노르망디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아브르의 여름(Un été du Havre)> 축제에 관한 기사 가운데 예술가의 작품을 설명하는 소개 글이다.


백사장에 서니 또 다른 조형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1972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사비나 랑(Sabina Lang)과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의 다니엘 바우만(Daniel Baumann)이 공동 제작하여 르 아브르 해변에 설치한 조형물이다. 이를 조각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설치물이라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르 아브르 해변 돌자갈밭에 세워진 두 예술가의 조형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조각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그들은 현재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어 환경에 추가하거나, 반대로 색다른 것처럼 보이기 위해 그것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합니다. 증강된 건축물, 풍경의 미세한 교란, 랑과 바우만의 작품은 우리에게 낯설거나 친숙해 보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이룹니다.”


르 아브르 노르망디 홈페이지에 화려하게 소개되고 있는 예술가의 작품 설명은 그들의 작품만큼이나 난해하게 읽힌다. 내 맘대로 해석하면 어떠랴. 현대 추상 조형물들이 그렇듯이 어떤 서사나 화제(話題)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관람자의 시선에 비친 작품이 지닌 상징성에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점, 그것이 현대 추상미술의 특징은 아닐까? 오래도록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바라볼수록 새로워지는 것이 예술이니까. 그런 까닭으로 해변에서, 조각품 앞에서 노을이 질 때까지 앉아있기로 했다. 뜨거운 태양아래 서늘한 바닷바람이 몽실거리는 여름 저녁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바다로 나가는 관문을 상정한 것일까? 아니면 직선으로만 이루어진 ‘통행’의 의미를 지닌 상징체계를 다룬 것일까? 관람자의 시선에 비친 조형물은 그저 의아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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