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물함

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35화

by 오래된 타자기


성물함은 예수의 시신에서 나온 유골들을 숨겨두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궤를 가리킵니다. 예수 이외에도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은 물론이고 성스러운 유물들이나 그들과 관련한 성스러운 것들을 넣어두기 위해 제작한 보관함을 일컫습니다. 특이하게도 음경이든 눈물이든 우유방울,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성인과 관련된 것이라면 모두 다 성스럽게 여겼다는 점입니다.


성 보딤므(Saint Baudime)의 흉상-성물함, 12세기, 생넥태흐(Saint-Nectaire) 교회 보물.


처음으로 등장한 성물함들은 성인들이나 기독교 순교자들의 성골함들이나 가장 커다란 신체 부위만 넣은 경우도 포함하여 시신 전체를 담은 관들이었습니다. 성물함은 항상 교회 내진의 주제단 아래쪽에 보관해 왔는데, 7-8세기 때에는 지하교회(크립트)로 이전합니다. 그런 연유로 성물함은 일반적으로 이동이 자유로운 작은 크기로 제작하는 것이 관례로 자리 잡았습니다.


크기나 형태는 성물함마다 다 다를 정도로 변화무쌍합니다. 처음 제작할 때부터 성물함은 성인들의 시신을 나누어 보관할 용도로 제작하는 추세였습니다. 성골함의 이동에 따른 조건이 고려된 탓이죠. 이 때문에 이곳저곳으로 옮기기 편리한 크기나 형태를 신중하게 고려한 제작이 성행하였습니다.


실질적으로 동방 예루살렘에서 성골함 제작이 이루어진 때는 4세기 중반입니다. 이때부터 성골함은 일반화되기 시작합니다. 서양에서는 카롤링거 왕조 때부터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제작 시에는 심미적인 가치나 재료값 이외에도 성물함의 기본적인 외관도 고려했습니다. 대부분 금은 세공을 하여 제작한 관계로 성물함은 애초부터 수많은 신자들의 숭배의 대상이면서 또한 많은 이들의 손길이 닿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예술품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외관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워 성물함 속의 유골들에 어떤 성스러운 힘과 기적을 일으키는 기운이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성물함은 일반적으로 봉인된 상태여야 하며, 또한 주교의 서명이 들어간 인증서를 갖춘 것이어야만 했습니다.


교회에서 귀중한 보물들이라 여긴 것들을 따로 모아 보관하는 소장실에서 다른 보물들과 함께 보관해 온 성물함은 오직 신자들에게 공개되거나 특별한 경우에는 길거리에서 성대하게 거행되는 종교 행렬의 상징물이 되어 바깥으로 옮겨지는 경우도 빈번했습니다. 평상시에는 그와 같이 공개되었지만, 아주 예외적인 경우 즉, 도적떼가 들끓어 혼란해진 상황이거나 전염병과 같은 재액을 물리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습니다.


12세기까지는 궤 형태의 성물함이나 장례용 성골함이 널리 유행했습니다. 궤나 성골함 모두 세밀하게 세공을 한 뒤 양쪽 각을 경사지게 만든 덮개를 씌운 형태였죠. 성물함들은 아주 풍부한 장식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간혹 성서의 장면을 아로새긴 조각들로 채워졌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12세기 중반 이후에 리모쥬에서 만든 것으로 바탕에 광물을 원료로 하여 만든 유약인 법랑을 부을 자리를 파낸 뒤, 유약을 부어 장식 무늬가 훨씬 두드러져 보이도록 제작한 성녀발레리의 성골함입니다. 이 성골함은 현재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쥬 궁전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파리 클뤼니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토마스 베케트 성인의 성골함도 유명합니다.


상아로 만든 궤, 11세기, 파르파(Farfa)의 산타 마리아 수도원.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최초로 조각상 형태의 성물함이 등장합니다. 조각상으로 제일 많이 등장한 인물이 성모 마리아이고 이어서 성인들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1014년경 앙제의 주교좌 학원장이었던 베르나르는 자신의 저술 「성녀 화의 기적에 관한 논고」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존중할 만한 관습은 여전히 존재한다. 고대에도 그러했거니와 오베르뉴 지역, 로데즈, 툴루즈 그리고 그와 이웃한 동네들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수련생들에게 자신들의 이름과 같은 성인을 금이나 은, 또는 금속을 이용하여 조각하게 한 결과 어느 경우에는 성인의 두상만 조각한 경우도 있고 또한 어느 경우에는 신체 가운데에서 가장 존중할 부분만을 조각한 경우도 있다.”


조각상들은 항상 위엄을 갖춘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권좌에 앉아있거나 왕관을 쓰고 앉아있는 형상입니다.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 즉 전지전능함을 좀 더 잘 보여주기 위하여 세속적인 권력을 상징하는 휘장을 두른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러한 기적의 능력이 조각상 자체에서 발산되어 나오는 것이라 여겨지게끔 세심히 다룬 듯합니다. 에띠엔느 드 클레르몽 주교(942-984)가 주문한 황금의 성모 마리아 조각상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전해오는 것은 스케치 소묘뿐입니다.


꽁끄의 어린 순교자 성녀 화 성물-조각함은 꽁끄 앙 루에르그 수도원 보물 소장실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성녀의 성물함은 나무로 제작되었는데 보석들을 돋보이게 하려고 얇은 황금 잎으로 금박을 입혔습니다. 그러나 조각상은 성녀가 아닌 남자의 두상을 하고 있습니다.


10세기에 제작된 성녀 화(Foy) 성골함-조각, 꽁끄(Conques) 마을 수도원 성당의 보물.


이는 아마 동로마 제국의 황제의 두상을 재활용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국적 아름다움을 조각상에 부여한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이 조각상은 10세기에 제작한 최초의 성녀 조각상보다 앞서 제작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세시대 내내 톡톡히 유명세를 치르면서 미화되고 이후에도 똑같은 조각상이 연달아 제작되면서 인심이 후한 기부자들까지 개입하여 성녀의 성물-조각함은 지속적으로 제작이 이루어집니다.


은으로 제작한 성골-성물함, 9-10세기, 시비달레 델 후리울리(Cividale del Friuli) 기독교 박물관.


로마네스크 시대에 와서는 성물함은 단지 문화적 관점에 초점을 맞춰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의 이미지를 신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대체하였습니다. 몇몇 성물함은 내용물에 따라 그 정확한 이름을 부여하기도 했죠.


소장되어 있는 성골함을 분류함에 있어서, 어형에 따른 형태론까지 등장했습니다. 일례를 들면, 팔 유골함, 열쇠 유골함, 발 유골함, 갈비 유골함, 또한 십자가 성물함까지 끝이 없습니다. 십자가 성물함에는 진짜 십자가가 들어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액체 성유골을 담을 작은 유리병 같은 성물함도 출현했죠.


실제 성스러운 작은 유리병이 랭스의 생 레미 수도원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유리병에는 성스런 기름이 들어있는데, 이는 프랑스 국왕에게 성유를 붓기 위하여 제작한 것입니다. 국왕 즉위식에서 왕위를 축성하기 위한 의도로 만들었으리라 추정됩니다. 비둘기 형상을 한 천사는 클로비스 시대에 표현한 천국의 이미지에서 따온 것입니다.


13세기부터는 안에 안치한 성골을 볼 수 있도록 제작한 작은 유리창문이나 유리관 형태의 성체합(聖體盒)이 유행합니다. 성물함의 형태는 따라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미니어처로 제작한 교회 형태의 성골함으로부터 왕관 형 성골함, 왕홀 형 성골함, 펜던트 형 성골함, 반지 형 성골함에 보석 형태와 장롱 가구 형태의 성물함까지 등장합니다.


진열장 성물함(립사노테크)은 여러 형태의 성골함을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림 형태의 성물함에서 조각이 무리 지어 있는 성물함까지 다양합니다. 심지어는 타조 알 형태의 성물함까지 등장합니다. 독수리사자 형상을 한 유물함도 있습니다. 1359년에 작성된 깡브래 대성당의 재고물품 조사서에는 그처럼 특이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성 야곱의 발 성물함, 1250년경, 우아니 수도원의 보물, 나뮈흐(Nam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