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252화
[대문 사진] 바르비종의 <밀레 기념관>에 전시되고 있는 밀레의 자화상
하늘이 맑다. 겨울 날씨 치고는 온화하다. 하지만 기온은 영하를 오르내린다. 이런 날에는 베란다에 앉아 한없이 출렁이는 기억 속의 바다를 떠올리고만 싶어진다. 유월 햇살에 타 들어가는 푸른 기와지붕들과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여름꽃들, 일렁이는 파도, 등대를 쉼 없이 내리치는 파도의 거센 물살, 또한 한없이 뻗어 나간 수평선을 날고 있는 물새떼들…….
작열하는 태양에 녹아드는 아스팔트 길 위에서 만난 마을들, 그 거쳐가는 길에서 마주친 올망졸망한 가게들, 인기척조차 없는 시골 들판을 누군가가 아침마다 말끔히 새로 흙을 돋운 구릉의 풍경들이 교차하는 침묵 속에서, 나는 대신 시골을 등진 화가를 떠올리고 결국 도시 생활에 지쳐 시골로 다시 도망친 그의 내력을 더듬어가다가 세월이 지난 지금, 실금이 간 그의 그림들을 미술관 전시실 벽에서 만나는 이 기막힌 조우까지도 떠올려본다.
풍경은 그림이 되고 사진이 되고 노래가 되고 시가 되는 이 놀라운 반전을 어찌 다 설명하리오. 고통뿐인 삶의 멍에를 짊어진 채 흙을 가는 농부의 휘어진 등에 얹힌 구름 가득한 하늘은 무얼 상징하는 것이며, 이삭을 줍는 여인네들의 소쿠리에 한가득 담긴 설움은 대체 무엇에 대한 기호이며, 들판을 떠돌다 모처럼 나무그늘 아래 휴식을 취하는 저 양치기 소녀는 어떤 꿈에 대한 해석인가?
봄을 기다리던 화가, 삶의 봄을 애달프게 그려보던 화가, 한 번의 결혼의 실패로 인해 좀처럼 여인을 가까이하지 못하던 중에 화가에게 새롭게 다가간 여인, 여인과 함께 꾸린 파리 인근 바르비종에서의 꿈은 그에게 아홉 명이나 되는 자식을 남겨주고, 오줌싸개 아이들의 지저귐마냥 감미롭던 인생의 늘그막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연작의 그림 속 인생은 나날이 여물어만 가는데, 화가는 대체 인상주의의 시작을 예감하고 있었을까? 코로가 그의 곁을 지키고 클로드 모네가 그를 따라다니고 빈센트 반 고흐가 저 멀리 네덜란드에서 그를 스승으로 삼고자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짐작이나 했을까?
사실주의의 화풍 속에서 빛과 그림자로 남을 저 들판에서의 ‘만종’을, 흙을 갈던 농부가 일을 돕는 아내와 함께 저녁 6시에 울려 퍼지는 교회 종소리를 듣고 바치는 기도의 저 엄숙한 절대 고독을 그는 왜 그리 끈질기게 화폭에 담아 갔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우리의 이 깊은 상처와 고통을 보듬어 줄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신은 혹여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말년의 경건한 믿음으로 그려 나간 고향의 쓰러져가는 ‘그레빌르 교회’는 후일 빈센트 반 고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 교회’ 그림으로 되살아나고, 이 기막힌 우연을 예술은 과연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
종교란 이름으로, 믿음이란 이름으로, 소망이란 이름으로, 예술이란 그럴듯한 명제로, 기억과 추억의 온전한 소박한 꿈으로, 농부이기에 저 따뜻한 흙냄새를 잊지 못하던 시대의 반항아가 그린 풍경쯤으로 우리는 바라보아야 옳은가?
나는 알지 못한다. 대체 왜 그는 셰르부르 인근의 한적한 시골에서 태어나 글도 읽을 줄 모르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중에 글을 배우고 그림을 익히고 평생 농촌 풍경을, 흙이 만들어낸 대지를 그토록 집요하게 화폭에 담아 갔는지를…….
우리는 때로 흙냄새를 맡기 위해 일부러 시골로 향한다. 그리고 감격한다. 우리가 태어난 곳은 바다가 아니라 흙이란 사실에 전율한다. 그 땅에서 우리의 부모는 밭을 일구고 작물들을 심고 우리를 먹여 살렸다.
논에다 벼를, 밭에다 배추와 상추와 파를 심고, 온갖 작물을 울타리 안에 가둬 심었다. 자식들의 식량이 될 그 소중한 먹거리들을 하늘과 바람과 비가 키워줄 것을 의심치 않았다. 경건한 믿음처럼 햇빛을 받고 자라는 먹을거리들을 수확할 때마다 그게 살이 되고 피가 되는 거룩한 변화의 조짐을 떠올리면서 하늘에게 감사하고 땅에 축복하며 햇빛과 비에 고개를 숙였다.
이 자연의 신자들인 농부들은 다름 아닌 우리의 선조들이었고 우리의 조상들이었고 우리의 어버이들이었다. 이 절대적인 믿음 속에 교회가 세워지고 반석이 생겨나고 우리네 삶이 이어졌다.
자연에 감사하고, 자연을 축복하고, 자연에 대한 믿음을 정화시키는 이 사실주의의 풍경을 그러나 21세기 우리는 자연의 한 그릇된 풍경화로 속단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입바른 그림에 대한 평가, 예술로 포장한 철학, 신랄함에 길들여진 해학, 예술가의 뒤나 캐고 다니는 비굴하고도 옹졸한 집요함, 저렇듯 말도 안 되는 패러디의 혀 끝에 놀아나는 독설들이 얼마나 자연을 모독하고 얼마나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서정을 파괴하고 얼마나 자연에 대한 경건한 믿음을 훼손하는지를 나는 잘 모르겠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 벽에 걸려있는 그의 그림들을 바라보면 이 자연의 순교자가 무얼 그렸는지 짐작된다. 이 자연의 예찬자가 무얼 의도했는지 이해가 된다. 이 자연을 노래한 시인이 무얼 희망했는지를 깨닫기까지 한다. 우리는 그렇듯 그가 그린 자연으로, 그가 그려본 자연의 축복으로,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우리의 낙원으로 걸어 들어가야만 한다.
자연의 축복자, 자연의 경건한 신자, 자연의 아름다운 시인, 자연의 엄숙한 성직자, 자연의 더할 나위 없는 예술가였던 그가 인도하는 대로 그의 희망 속으로, 그의 믿음 속으로, 그가 애정 어린 눈길로 담은 인물들에게로, 그가 더할 나위 없이 사랑한 풍경 속으로 진입해야만 한다.
경건함과 소박함, 엄중함과 절대적 의지, 신의 조화로운 창조와 대지의 말없는 축복, 지상에서 벌어지는 고통과 환희와 실의와 희망의 뒤섞임을 우리는 이해해야만 한다.
인상주의가 오기 전에, 빛의 화가들이 대거 뛰어들기 전에, 어둠 속에서 광명의 대지를 향해 화구를 메고 걸어간 그의 치열함과 끈기를 읽어내야만 한다. 이 세상 다할 때까지 멈추지 않던 그의 대지에 대한 예찬, 지상에 대한 축복, 인간을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애정, 그 사랑과 믿음의 축복 속에서 그의 예술이 다시 태어나고 화려하게 피어나고 드디어는 만개하고 있음을 우리는 지켜보아야만 한다. 그것만이 이 자연의 철학자, 시인, 예술가에게 바치는 우리의 경건한 믿음이자 찬사일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을 다시 찾아봐야겠다. 기다란 복도 끝 전시실에서 그의 그림들을 다시 마주 대해야겠다. 오노레 도미에의 그림 옆에 전시된 그의 그림들을 통하여 예술가 자신이 속한 시대를 향한 저항과 분노가 어떻게 표출되고 이어졌는지도 깨달아야겠다.
<만종> 앞에서 나 또한 그의 예술에 경건한 찬사를 보내야겠다. <이삭 줍는 여인네들> 앞에서 대지의 소중함을 깨달아야겠다. <양치기 소녀> 앞에서 수줍은 자연의 꿈을 키워가는 한 소녀의 희망을 읽어봐야겠다. <봄> 앞에서 그의 여물지 못한 인생의 성공을 고대하는 자연의 시인이자 예술가의 눈물진 소망까지도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미술관의 카페에서 차 한 잔에 그의 삶과 예술을 저어봐야겠다. 그게 과연 달콤한 맛인지 아니면 내 삶의 뜨거운 온기일지를 생각해 봐야겠다. 이 화사한 겨울날 내 꿈이 여물고 내 삶이 다시 개화하고 내 청춘이 되살아나고, 아득한 시절부터 키워왔던 기대와 꿈이 이루어지는 감탄스러운 희망의 순간인지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