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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부르의 유월

몽생미셸 가는 길 251화

by 오래된 타자기


눈 대신 비가 내리는 겨울, 파리, 어쩔 줄 몰라 유리창밖 베란다에서 한없이 내리는 비만 바라본다.


어찌합니까

어찌해야 하나요


눈 대신 내리는 비

빗물로 고인 슬픔을


어찌합니까

어찌해야 되나요


마지막 남은 잎새들마저 힘겨워하는

차디찬 빗방울을


어찌합니까

어찌해야 하나요


시듦은 속 깊은 아픔처럼

눈물로 얼룩지는데


어찌합니까

어찌해야 되나요


이 계절 다하기 전에

빗물이 꽃물이 되어


눈꽃으로

다시 피어날 순 없나요?



한 해가 다하고 새해가 시작되었건만, 아직도 나는 셰르부르에서 처음으로 맞은 여름 그 기억을 더듬어가고만 있었다.


셰르부르의 유월


찬란한 태양이 내리쬐던 시골길에서, 셰르부르 앙 코탕탱을 향한 길 위에서, 그리고 점점 더워만 가는 날씨 속의 빛바랜 시골집들의 지붕너머로 넘실대던 바다,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온 생각을 내맡기는 아득한 저 편 기억 속의, 운전대를 잡은 손끝으로 전해오는 떨림, 어느새 처음으로 찾아가는 여정의 마지막 종착지 코탕탱의 셰르부르를 떠올리며 긴장하는 낯섦, 영화 「쉘부르의 우산」 속 엔딩곡 “그대만을 기다리고 있을게요(I will wate for you)!”가 흘러 퍼지는......


“그대만을 기다리고 있을게요(I will wate for you)!”


셰르부르는 우리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우리 두 사람의 정체를 그 도시는 미리 짐작하고 있었을까? 운전 중에 나는 조용히 아내를 바라본다.


아내는 나를 기다려주었다. 처음 만난 이후로 9년 간을 말없이 기다려만 주었다.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가끔, 아주 가끔 우리는 만났다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사랑을 이유로 결혼을 했다.


파리로 온 아내는 서울에서처럼 똑같이 파리에서 또 한차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이듬해 파리 근교에서 에펠탑이 보이는 파리 중심가로 이사를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지만 않았던 신혼이, 젊음이, 청춘이, 희망과 꿈이 고스란히 파리의 길들 위에 뿌려지던 젊은 날의 편린은 화창한 셰르부르를 향한 길 위에서 다시 한번 반짝인다. 별처럼 꿈처럼 뿌려지던 저 아득히 멀어져만 가는 젊은 날의 기다림처럼!



그대만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I will wate for you



하늘 키 자라 더 푸르러지고

바람 켜켜로 시린 가을 가득

노을빛 닮은 가을 실그물 펼쳐

세상은 바다 비로 옅게 젖는데


시름 푼 녹녹한 가을 저녁

내 잠은 그리움만큼 길어지고

내 잠은 달빛만큼 깊어지리니

그대 해진 신 벗고 쉴 수 있길


내 꿈 속 그대 쉴 작은 집 짓노니

그리운 사랑 살며시 그 문 열고

내 잠 속으로 어서 와 누우시기를

영원의 꿈에 잠긴 엔디미온처럼


겨울 봄 여름 그리고 가을 내내

여린 꿈 꾸는 내 곁에 머무시기를

그리움도 반딧불 그늘에 잠들기를

그 잠 속에 녹아 녹아 깨지 말기를


- 시 「엔디미온의 잠 속으로」


『양철가슴』, 문학동네. 2005년, 서울.


서울서 재회한 아내가 될 여인이 명동성당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며 내게 들려준 속삭임이었다. 노래였다. 시였다! 1997년 이른 봄의!


이른 봄의 명동성당, 성모 마리아 대성당.


그리고 2019년 태양이 가득히 내리쬐는 길을 자동차로 달려가면서 젊은 날의 초상을 떠올리는 길 위에서 상상만이 가능한 인생의 과거를 추억하는 부끄러움에 긴장하고 만다. 뜨거워진 태양에 나무들도 꽃들도 집들도 도로 표지판까지도 눈부시게 그을려진 모습이다.


삶도 저처럼 곱게 그을릴 수 있는 걸까? 완전히 여문 꽃봉오리가 꽃을 피울 때까지 태양은 꽃 이파리를 뜨겁게 달굴 것이고, 바람에 흔들리듯 천천히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나비가 날아와 앉겠지. 벌들도 환한 여름꽃 이파리 위로 날아들겠지. 자연은 모든 걸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유월에 피는 꽃, 나비와 벌이 날아와 앉는 여름꽃.


인생도 저처럼 순하게, 유순하게 모든 걸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생각에 빠진 오후, “그대만을 기다리고 있을게요(I will wate for you)!”


가끔은 감상적이 된다. 나이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힘들었던 시기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아내에게 미안해지기도 한다. 삶보다 중요했던 사랑, 이전에는 삶이 사랑보다 더 중요했었다.


가난하고 한없이 가난했던 호주머니 속의 차가운 바람만을 만지작거리며 정처 없이 떠돌던 시절이 숨 가쁘게 지나가면서 사정없이 등을 떠밀던 서울, 한없이 싸늘하기만 한 겨울의 한기를 이기지 못해 떠밀려 찾아온 거리, 파리에서의 삶은 고독과 운명과의 싸움처럼 처절하기만 했다. 그때마다 글을 썼다.


누군가 기다려 준다면,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내 이제는 그 누군가를 찾아 나서야 하리.



내겐 다시 이 같은 사랑이 없으리라.
I will never love again.



멀리 셰르부르의 시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언덕에 차를 세우고 바람을 쐬면서 심호흡을 해본다. 군사 항구임을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셰르부르가 그렇게 첫인상으로 어른거린다. 달의 표면에 첫 발자국을 조심스레 내딛는 우주인처럼 조용히 차를 몰아 나폴레옹 광장 쪽으로 향하며 올려다 하늘,


© Aymeric Picot


항구가 바로보이는 광장엔 말을 탄 나폴레옹의 기마상이 바다를 등지고 서있을 것이다. ‘쉘부르의 우산 가게’는 대성당 어느 골목쯤인가 숨어있을 테고, 미술관엔 코탕탱 그레빌르에서 태어나 셰르부르에서 화업을 익힌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림이 걸려있을지도 모르겠다.


셰르부르 옥뜨빌(Cherbourg-Octeville) 공원에 서있는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기념비.
셰르부르 토마-앙리 미술관(Musée Thomas-Henry)에 걸려 있는 밀레의 「미망인 루미의 초상화」(1842).


물새들은 날아올라 잠수함의 거대한 고래등 같은 시커먼 등짝을 토닥여줄지도 모른다. 루이 14세 때 보방도 포기했던 군사 항 기지에서 때 늦게 드는 브런치는 빵에 버터만 바른 채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함께 할 것이다.


프랑스가 자랑하는 핵잠수함, 노르망디 관광청 인터넷 홈페이지 속의 꼬할린과 레오(Coraline et Leo) 사진.


시원한 파티스트 얼음덩어리들은 파도 거품에 쓸려가고 대신 빈 잔에 쏟아지는 유월 햇살 가득 담아 마시리라. 청춘의 붉은 노을과 노년의 차디찬 오후를 뒤섞어 흔들어대며, 기억의 날줄과 씨줄을 타고 떠오르는 삶의 파편들을 이어 맞춰 가리라.


해양박물관 수족관(A la Cité de la mer), © Refuse to Hibernate.


누군가의 노랫가락처럼, 정답게 때로는 묵직하게 가라앉아가는 음색에 실린 악보 속의 음표들처럼, 귀를 간지럽히는 새들의 지저귐처럼, 새로 피어나는 꽃 이파리의 흔들거림처럼, 나부끼는 셰르부르의 문장이 새겨진 깃발처럼, 가로등 그림자로 길게 눕는 긴 오후의 거들먹거리는 뜨거운 햇살을 가려줄 파라솔 온갖 반짝이는 색상들처럼 비가 내리는 날도 있겠지. 우산을 펴든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도 있겠지, 대성당의 종소리에 쏟아져 나오는 결혼식 하객들의 소란스러움에 일제히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비둘기떼의 환호성도 들리겠지. 성당 앞 광장은 그들만의 축제가 되풀이되고 상점 카페에서 결혼식 하객을 지켜보는 달짝지근한 눈길엔 비둘기들이 날아오르는 평화와 고요가 묻어 있겠지, 있겠지 싶다.


셰르부르 연극 극장 앞 광장, 노르망디 관광청 인터넷 홈페이지 속의 꼬할린과 레오 사진.


천 년을 이어온 교회들은 기욤(윌리엄)의 시대에, 마틸드의 시대에 세워졌다. 결혼해서는 안 되는, 그래도 결혼을 한 청춘남녀에 대한 종교적 파문에 의한 보속의 일환으로 세운 건축물의 속 깊은 사연을 품고 있다. 어찌하나? 삼위일체 성당을 돌아 마틸드의 자선이 베푼 구제원의 뜨락을 거닐다 보면, 중세와 만나는 오후의 시간은 길어져만 갈 테고 생트 메흐 에글리즈(Sainte Mère Église)에서의 점심식사가 늦어질 판인데, 생로(Saint-Lô)는 너무 멀리로 달아나기만 한다.


정복왕 기욤(윌리엄)의 시대에 바실리카 양식으로 세워진 셰르부르 성삼위일체 성당(La basilique Sainte-Trinité).
마틸드가 세운 셰르부르의 소망의 노트르담 성당(L'église Notre-Dame-du-Vœu).


고속도로엔 태양의 열기만 가득하겠지. 오후 열기에 숨죽인 도로 표지판이 정오를 한참 넘어선 시각을 가리키는 길, 방향엔 코탕탱을 오가는 차량들만이 숨 막힌 질주가 묻어나겠지. 우리 두 사람 행복하게도 유월의 상쾌한 밤을 향해 질주해 가겠지. 거기엔 유월의 달콤한 사랑과 추억과 함께 저녁 햇살 한가득 담겨있는 테이블이 기다려주겠지.


바다 너머로 해가 지고
추억으로 남을 셰르부르


테이블에 놓인 소다수에 상큼한 밤을 맞이하는 두 사람에게 은총처럼 내리는 어둠 깊고 푸른 밤의 정수리로 부는 대서양의 소금기 어린 바람, 바람소리에 놀라 후드득 날아가는 새떼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며 달려온, 달려갈 길을 아득히 떠올려 보던 유월, 2019년의!


노르망디 바닷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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