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생미셸 가는 길 253화
[대문 사진] 디디에 로랑(Didier Laurent) 사진
내 조상은 바다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내 조상은 내륙의 따뜻하고 온화한 지역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었다. 내가 태어난 곳도 그렇듯 바다와는 멀리 떨어진 내륙의 한 모퉁이쯤 된다.
나는 수영을 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수영을 배우려 한 적도 없다. 어린 시절에는 바다 가까이에 가본 적도 없다. 하지만 물을 좋아했고 흐르는 물을 특히 좋아했다. 어쩌다 제삿날 덕분에 시골의 큰 집으로 내려가면 사촌과 함께 냇가에서 쉬리나 붕어나 가재를 잡는 재미에 홀딱 빠져들곤 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채나 소쿠리를 이용하여 물고기를 잡는 재미는 나를 물과 가깝게 만들었다.
어린 내가 바다를 처음 접한 건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해수욕장을 찾은 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후로 바다를 다시 찾아간 적은 없다. 그렇듯 바다와 멀리 떨어진 삶, 바다를 동경한 적도 없는 삶, 그것이 내 어린 시절의 삶이었다. 하지만 이후로 나는 늘 바다를 향해 있었다. 언제나 기차의 종착지, 그곳이 목포이든, 부산이든, 강릉이든 바다와 함께 하곤 했다.
제주도엘 가본 적은 없지만, 배를 타고 서해 앞바다의 섬을 찾은 적은 있다. 그리고 이곳 프랑스에서 산 지가 더 오래되는 시점에서 다시 기억을 떠올려보면, 산을 찾아간 것보다 바다를 찾은 적이 더 횟수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왜 바다와 가까워진 걸까? 틈만 나면 바다를 찾아간 걸까? 그것도 지중해보다는 대서양을 더 가까이한 걸까?
대서양의 한 모퉁이 망슈(Manche) 해협은 노르망디 바다를 가리킨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해협을 이르는 프랑스식 명칭이다. 해협의 모양새가 마치 ‘소맷자락’ 같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해협은 북해와 대서양 남쪽 사이를 오가는 화물운반선들로 붐비는 유럽 최대의 항로가 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유조선이나 화물운반선이 풍랑을 맞아 전복되는 사고도 심심찮게 일어나곤 한다.
또한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쟁이 벌어진 전쟁터이기도 하다. 이 바다 위에서 영국과 프랑스와 독일은 지칠 줄 모르고 싸웠다. 바이킹과 앵글로 색슨, 켈트 족이 누비고 다니던 신화와 역사 속의 바다는 이제 수많은 페리와 크루즈 그리고 화물선과 어선들이 오가는 다큐멘터리 속의 바다로 바뀐 지 오래다.
망슈 해협은 플랑크톤이 풍부하여 온갖 물고기와 갑각류, 그리고 조개류가 서식하는 바다의 보물 창고다. 여기서 서식하는 어류만 하더라도 대구, 명태, 도미, 가자미, 넙치, 광어, 몸 색깔이 붉어서 루제(Rouget de roche)란 이름이 붙은 물고기와 그롱댕 루즈(Grondin rouge), 갑오징어, 오징어, 새끼 상어, 돌고래를 비롯하여, 오마흐(Homard)라 불리는 바닷가재, 털게, 랑구스틴(Langoustine), 새우 등속과 함께 굴(석화)을 비롯한 온갖 조개류가 유럽 최대의 갯벌을 자랑하는 이곳 뻘밭에서 서식한다.
당연히 해산물을 이용한 해물 요리가 발달한 곳도 망슈 해협을 끼고 있는 노르망디 바닷가다. 그래서 노르망디 하면 자연 바다가 떠오르고 해물 요리가 눈에 아른거리기까지 한다. 노르망디를 찾은 외지인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잡은 해산물을 갖고 요리한 이 지방만의 특선 요리를 마다하고 육고기에 눈이 팔리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노르망디 바다를 좋아한다. 망슈 해협의 바닷가 마을들을 찾을 때마다 여기서 한번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풍양 조 씨인 어머니에게 술을 배운 나로서는 이곳 노르망디 바다가 더없이 훌륭한 여생의 마지막 장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놓치지 않은 걸 보니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바닷가에서 살며 산책도 하고 포구에서 어부에게 직접 구입한 해산물로 직접 요리도 하고 인근 바닷가 갯바위에서 낚시도 즐기면서 홍합이나 따개비, 굴도 채취하여 입맛을 돋우고 글 쓰는 일에 홀딱 빠져 사는 말년을 일찌감치 꿈으로 키워왔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갖게 되는 동경일 것이다. 하지만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꿈은 더 달아난다. 인생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잘 여문 꿈 하나 간직하고 사는 것이 꿈을 실현하는 것보다 더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 꿈을 아직도 이루지 못한 채 이렇듯 바닷가만 맴돌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하기야 바다는, 바닷가에서의 삶은 늘 동경의 대상이며, 꿈의 정체 모를 끈질긴 관심이자 집착이고 애정에 가깝다.
내일 우리는
광활한 바닷가의 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Cras ingens iterabimus aequor.
기원전 8세기에 로마에서 사망한 호레이스 퀸투스 호라티우스 플라쿠스는 라틴어 송가에서 그렇게 노래했다.
내일쯤이면 아내와 나 우리 두 사람은 그렇듯 광활한 망슈 해협의 한 모퉁이 바닷길을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작은 쪽배들과 요트들이 떠있는 다큐멘터리의 바다에서 역사와 전설의 바다를 향해 나 있는 정처 없는 길을 하염없이 걸어가고 만 있을 테다.
[주] 여기에 실린 몇몇 사진들은 프랑스-독일 공동 텔레비전 방송 아르떼(ARTE) 방송 화면을 캡처한 것임을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