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보느리가 들려주는 로마네스크 예술 이야기 51화
[대문 사진] 독일 마울브론 수도원
시토회 수사들은 성 베네딕투스가 제안한 규칙에 근거한 규정에 따라 일과시간에 수사본 제작일을 긍지를 갖고 지속적으로 수행하면서 자신이 속한 수도원 건설을 위한 공사에 미력이나마 힘을 보탰습니다. 중세의 여러 다양한 중세 회화들이나 채색 삽화들은 공사장에서 일하는 그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죠.
토목공사를 책임진 수도원 의식주 담당자의 지시에 따라 수사들은 평수도사에 의해 진척되고 있는 공사장 일들을 거들었습니다. 이들 평수도사들은 정식 수사들이 아닌 미사 전례를 돕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수도사들은 수도원에서 매일 진행되는 8가지 성무 일과를 담당하던 이들은 아니었습니다. 수사들처럼 수도원장에게 복종할 것을 서원(誓願)하고 의사를 표명한 시토회 평수도사들은 수도원 안에서 전적으로 노동일에 헌신했습니다.
당시 농촌사람들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것처럼 이들도 거의 대개가 글을 읽고 쓸 줄을 몰랐습니다. 옷은 갈색이었는데, 이는 하얀 옷을 입은 정식 수사들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였지만, 일할 때 더러워져도 쉽게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의 옷차림은 마포로 짠 헐렁한 옷차림에 검은색 짧은 덮개를 어깨에 두르는 정도였죠.
시토회 수사들과 평수도사들은 건물을 잘 짓기로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그들의 명성은 점차 널리 퍼지게 되었고, 이와는 다른 분야의 일에까지 천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황제 프리드리히 2세(1220-1250)가 자신의 궁전을 짓는데 시토회 소속 평수도사들을 부른 일이었죠.
요컨대 석공들과 목수들이 그많은 시토회 수도원들을 하루아침에 지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보다 건물을 잘 짓기 위해 고심했고 또한 완벽을 기했습니다.
아르노 드 본느발(Arnaud de Bonneval)은 『베르나르의 생애』를 증언하면서 클레르보 수도원 공사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일손의 소모 현상이 발생했을 정도로 일꾼들에게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부과되었다. 평수도사들은 건설현장의 모든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나무를 자르고, 또 어떤 이들은 돌을 자르고 다듬었으며, 또 다른 이들은 벽들을 쌓아 올렸다.”
수사들은 수도원 공사에 전문가 인력을 채용하고 보수를 지불했습니다. 수사들은 또한 전문가와 협력하여 공사를 진행하기도 하였으며, 전문가의 솜씨를 지켜보고 난 뒤에는 그 기술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돌에 새겨진 흔적들 가운데에는 ‘하청인들의’이란 글귀도 발견되는데, 이를 통해 추론해보건대 몇몇 시토회 수도원에서 공사용 돌들 위에 적어놓은 표시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바로 그처럼 돌을 자르고 다듬는 인력을 위하여 수사들을 고용했다는 사실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흔적들은 세낭끄(Sénanque) 수도원에서 발견된 것들입니다. 고용된 이들이 문서에 서명한 글씨체와 일치하는 이러한 흔적들은 보수를 받고 공사현장에 투입된 고용된 수사들이 남긴 흔적으로 여겨집니다. 다시 말해 이 같은 방법으로 자신들이 자르고 다듬은 돌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개수까지 헤아릴 수 있었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