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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 제도의 작은 섬들

몽생미셸 가는 길 249화

by 오래된 타자기

[대문 사진] 채널 제도의 세르크 섬



채널 제도에 속한 작은 섬들 이름은 ‘앵글로 노르망디’ 어에 기원을 두고 있다. 섬을 지칭하는 명사 올므르(holmr ; 섬을 가리키는 îlot)로부터 명사 끝에 -hou가 위치한다. ‘케투(Keteou ; Jethou)’란 단어는 1091년 문서에 등장하고, ‘리슈(Lishou)’, ‘에스크르우(Escrehou)’, 브라케오(Brakeho)라는 말(오늘날에는 Lihou, Ecréhou, Brecqhou라 표기)은 12세기 문서에서 발견된다. 뷔루(Burhou)란 말은 13세기의 문서에 등장하며, 꼬끌리우(Coquelihou)란 어휘는 그보다 더 늦은 시기에 등장한다.


세르크(Sercq) 섬만큼은 예외다. 이 섬은 중세 말까지 주민들을 소개했고 이후 엘리자베스 1세 치하에서 저지 섬과 함께 영국령으로 편입되면서 옛 지명들, 즉 코탕탱 북쪽에 위치한 섬들이 옛날 옛적 스칸디나비아 인들이 몰려와 정주하던 곳이란 사실을 떠올리게 만들어주던 스칸디나비아 어로 된 옛 지명들 대부분 역시 사라지고 말았다.


채널 제도에 위치한 영국령 세르크 섬(île Sercq, Sark island)의 라 꾸뻬(La Coupée).


건지 섬은 바이킹들의 길인 라 아그(La Hague) 항구를 출발한 배가 브르타뉴 북서쪽을 향해 가던 해상에 위치한 섬이다. 대서양 연안을 따라 길게 띠를 이룬 이곳은 바이킹들이 물자를 공급받던 거점이거나 기항지로 활용되던 곳이다.


영국의 채널 제도에 위치한 건지(Guernesey) 섬.


저지 섬은 건지 섬과는 달리 면적도 넓고 땅도 비옥하다. 저지 섬은 바이킹들에게는 실용적인 관점에서 식민지로 삼을 만한 최고의 거점 구실을 하던 섬이었다. 건지 섬보다 저지 섬에 스칸디나비아 어로 된 지명이 훨씬 많은 이유가 바로 그와 같은 데서 연유한다.


영국의 채널 제도에 위치한 영국령 저지(Jersey) 섬.


저지 섬에는 스칸디나비아 어로 된 지명이 해안뿐 아니라 섬 이곳저곳에 풍부하게 분포하고 있다. 코탕탱 북쪽의 지명과 여러모로 비교된다. 이는 바이킹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지역임을 떠올려준다.


이곳에서 바이킹들은 생 로랑 본당에 소속된 생토뱅 만 안쪽 내륙지역에서 농업활동에 종사했다. 이 같은 사실은 꾸앵 뚜흐지(Coin Tourgis) 및 꾸앵 아탱(Coin Hatain)[1]의 ‘농산물의 이할세(二割稅, Vigntain)’라는 말에서 증명된다.


세인트 클레멘스 만(저지 섬의 남동쪽)의 또 다른 거류지는 농업 활동보다는 확실히 해상 활동을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항해를 하거나 어업 활동에 종사하거나 아마도 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생산했을 가능성이 높다.


20세기 초 저지 섬에서 해초를 수확하는 장면. 기념엽서. 개인 소장품.


지명 이외에도 스칸디나비아 어로 된 인명 역시 후세에 씌어진 옛 고증 자료들만큼이나 많은 숫자가 발견된다. 예를 들어 건지 섬의 카텔 교회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설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저지 섬(Jersey island)의 카텔 교회(Catel church).


옛 지명인 ‘우그(hougue ; ‘작은 언덕’이란 뜻)’는 ‘그랑 조흐루아(Grand Geffroy)’의 섬사람들과 관련이 있으며, 조흐루아란 말은 아마도 프랑크 왕국의 연대기에 등장하는 덴마크 바이킹의 우두머리였던 구오흐리오르(Guðfriðr)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20세기 초까지 섬마을 사람들이 유창하게 사용하던 방언들은 코탕탱 지방의 사투리와 비슷하며, 많은 숫자의 스칸디나비아 어에 기원을 둔 방언이 공용어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저지 섬과 세르크 섬에서 쓰는 방언과 건지 섬과 오리니 섬에서 쓰는 방언은 또 차이가 난다. 이러한 사실은 이들 섬들과 코탕탱 간의 관계가 아주 밀접했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사실 1204년 노르망디를 분리시킨 정치적인 사건[2]만 아니었어도 코탕탱과 주변 섬들은 서로 긴밀한 관계였을 것이다. 1567년까지 꾸땅스 주교의 성직자 관할권이었던 섬들은 모든 것이 공존 가능한 땅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노르망디 출신이든 아니든 저지 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유전자(ADN ; 영어로 DNA)를 채취하여 그 시료를 토대로 연구 조사한 결과 30%만이 이방인들이었고, 나머지 대부분 주민들은 켈트 족의 혈통을 지녔음이 판명되었다.


이러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색슨 계통과 덴마크의 앵글로 색슨 계통을 명확히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섬들에 붙여진 지명이나 인명에 대한 조사는 확실히 이 지역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덴마크인들의 섬에 대한 공헌이나 기여도를 도외시하기 어렵게 만든다. 건지 섬만 보더라도 이방인들의 기여나 공헌 정도는 그렇게 크지 않다. 게다가 노르웨이 인들이 출현한 흔적도 발견된다. [3]






[1] 꾸앵 뚜흐지(Coin Tourgis)와 꾸앵 아탱(Coin Hatain)은 도르지슬(Þorgisl)과 하슈타인(Hásteinn)이란 이름에 기원을 두고 있다.


[2] 바이킹들이 세운 노르망디 왕국은 정확히 1204년에 붕괴되었다. 이후 노르망디는 필리프 오귀스트 국왕이 이끌던 프랑스 왕국에 편입되었다.


[3] 장 르노(Jean Renaud), 『바이킹들이 이룩한 노르망디 왕국(La Normandie des Vikings)』, 오렢(OREP) 출판사, 파리에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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