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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첼리나 Apr 21. 2024

청소를 한다.

가끔 청소에 집착한다고 스스로 느낄 때가 있다. 청소할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퇴근 후 뭔가를 해야겠다 결심하고 책상에 앉으면 자꾸 먼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책상에 앉은 지 몇 초도 되지 않아 다시 일어나 책상을 정리하고 눈에 거슬리던 먼지를 닦는다. 이렇게 청소가 시작된다. 사실 청소한 만큼 집이 깨끗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직 그 정도로 청소에 집착하지는 않는가 보다. 창문틀, 베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들에는 차마 시선을 둘 수 없으니 말이다. 어떤 작은 것 하나라도 하기 전에 내 주위가 정돈이 되어있어야 시작할 마음이 생긴다. 그러니 청소를 한다는 건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다.

 

청소는 하루의 혼잡했던 마음을 비우고 정리하는 일이다. 오랜 타지 생활을 하면서 마음 깊은 곳에 항상 불안이 존재했었다. 청소는 나의 불안을 조금 잠재워주는 의식 같았다. 내가 잘 살아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나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내가 아직 이룬 것이 없더라도 청소는 하면서 살고 있다." 이런 생각들로 나 자신을 위로한다. 청소하는 동안의 나는 어딘가에 집중할 수 있었고, 내 몸을 움직이고 있으니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고, 청소가 끝난 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청소는 나에게 오래된 습관이 되었다.


한국에서 사는 지금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불안은 사라졌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이 작은 집에서 청소할 곳이 있는지 매일 찾아다닌다. 신기하게도 매일매일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들이 있다. 어제 청소기를 돌렸는데, 오늘 또 청소기를 돌리면 먼지가 나온다. 유일하게 먼지를 만들어내는 동물이 인간이라고 하지 않는가. 청소를 하며 내 안의 매일매일 생겨난 먼지를 제거하고, 여기저기 갈 곳을 잃은 물건들의 제자리를 찾아주고, 나는 다시 하루를 살아간다. 청소는 일상에서 나를 새롭게 하는, 나를 다시 일깨워주는 유일한 행위이다.  





2023.01.23, J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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