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독일 유학을 결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까지 살던 방식으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뚜렷한 꿈이 있었기에 나의 앞으로의 삶을 확실히 결정할 수 있었다. 이 중요한 결단 이후 내 삶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다니던 대학교를 그만두고 유학자금을 조금이라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이 끝난 뒤에는 독일어 학원을 다니고 독일에서 다닐 어학원을 알아보고 숙소와 학교 등 독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처럼 독일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 또는 독일에 살다 온 사람들을 사귀고 만나게 되었다. 이런 과정 중 나도 조금씩 달라졌다. 내 삶에 더 주체적이게 되었다. 어디에서 유학을 할지, 어느 학원을 다닐지, 어떤 집에서 살 것인지, 얼마 정도를 부담할 수 있는지 다 내가 선택하고 계획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
독일에 가니 한국에서 유학준비할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내가 결정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물론 어학원을 등록해 매일 일과가 학원을 가야 하는 일뿐이었지만, 그 안에서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것들이 생겼다. 독일어 시간에 선생님이 하나의 주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물었을 때, 나는 나의 많은 생각들 중 하나를 결정해서 대답을 해야 했다. 친구들이 파티를 초대하거나, 어딘가로 놀러 가자 라는 제안을 할 때도 항상 '네가 원한다면'이라는 조건문이 달린 질문을 했다. 그럴 때면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결정을 내려 대답을 해야 했다.
독일에 가기 전 나는 한국에서 내 삶이 끌려다니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내가 내 삶에 어떤 것도 결정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독일에서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내가 내 삶을 끌지 않으면, 내 삶은 가만히 정체되어 있었다. 손 놓고 있으면 나를 아무도 봐주지 않았다. 독일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일을 주로 하고 싶은지, 오늘 어떤 업무를 하며 하루를 보낼 것인지, 내가 결정해야 일을 시작하고 동료들과 협업할 수 있었다.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 한국에 있으면서 내가 어떤 결정들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다시 끌려다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한국은 독일과는 다르게 내가 결정하지 않아도 결정되는 것들이 있다. 물론 나 스스로 한 결정이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가족들이 있고, 나이도 있으니 나 스스로 더 어떤 일에 대해 의무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일 수도 있다. 사소한 결정들이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 간다. 내가 매일 마주치는 결정들에 대해 내가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렸는지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