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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첼리나 Jul 07. 2024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독일은 비가 많이 내리는 나라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다가도 갑자기 해가 쨍하게 나타나고, 다시 구름이 끼고, 바람이 세차게 불고 하루 동안 날씨가 자주 변하는 날들이 많다. 때로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하루 종일이나 일주일 내내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날씨에는 우산을 쓰기도 애매하고, 안 쓰자니 옷이 어느새 다 젖어버릴 것 같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독일 사람들은 이런 날씨에 적응이 됐는지, 웬만한 양의 비가 내리지 않으면 우산을 쓰지 않는다. 대신에 기본 생활방수가 되는 모자가 달린 바람막이 점퍼를 입는다. 거의 계절에 상관없이 365일 바람막이를 입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처음에는 독일의 날씨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나는 비를 좋아했지만, 독일의 비는 나를 좀 우울하게 했다. 해가 원래도 자주 나오지 않는데, 비가 더해지면 하늘은 회색에서 더 어두운 잿빛 하늘이 되었고, 비도 어정쩡하게 오래 내리니, 우산을 폈다 접었다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오래 살다 보니 어느새 독일의 비의 적응이 되었는지 독일의 비도 좋아하게 되었다. 흐린 날이면 바람막이를 챙겨 입었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에는 우산을 쓰지 않았다. 비가 오다 갑자기 해가 뜨면 기분이 급격히 좋아지곤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늘을 먼저 보았다. 오늘의 하늘은 무슨 색인지,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할지, 매일 날씨를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회색 하늘에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면 '이래야 독일 날씨지' 하며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주일 전, 서울에서 장마가 시작되었다. 오랜동안 한국을 떠나 있었으니, 10년 이상 '장마'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다. 라디오에서 장마가 온다는 얘기를 듣고 문득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에 살았을 때 장마 때면 항상 이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아주 어렸을 때 우리 가족은 조립식 주택에 살았는데, 한 여름밤 지붕 위로 내리치는 장마 빗소리가 얼마나 크고 시끄럽고 무섭던지, 그 소리와 분위기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오랜만에 '장마'라는 단어를 들으니,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장맛비가 내리는 저번주 어느 날 출근하기 위해 밖을 나섰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사우나 같은 습한 공기와, 강하게 내리는 빗소리를 경험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더 강하게 느껴지는 자동차와 버스의 소음들까지, 다시 한국에 살고 있음을 실감했다. 독일에서는 비가 오래도록 많이 내리는 한국의 여름이 그리운 적이 있었다. 조용한 독일과는 달리 한국에서의 여름은 그 어떤 계절보다 시끄러웠다. 그 시끄러움이 그리웠다. 비 오는 소리, 태풍 부는 소리, 아이들이 뛰며 노는 소리, 주방에서 엄마가 요리하는 소리, 선풍기 소리, 매미가 우는 소리가 그리웠다. 장마가 시작되고 이런 소리들 속에서 사는 나의 일상 또한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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