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활 중 가난했을 때가 몇 번 있었다. 갑자기 의도치 않게 목돈이 나가는 경우가 그랬다. 그 기간 동안은 정말 돈 한 푼 쓰는 게 싫었다. 누구를 만나기도 싫었다. 만나면 커피라도 한 잔 해야 했기에 약속도 거절했다. 생필품이 떨어지는 건 더 무서웠다. 어쩔 수 없이 돈을 쓰게 되니 말이다. 외국에 살다 보면 돈폭탄을 맞을 수 있는 걸 대비해 계획적인 소비를 하게 된다. 물론 모든 유학생이 그렇지는 않다. 그래도 내가 유학했던 독일에서는 절약하며 사며 유학생들을 꽤 있었다.
독일은 검소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내가 경험한 독일은 선진국이지만 정말 검소한 나라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이 살 수 있게는 해준다. 식비, 생필품의 가격이 싸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사치를 부리고 싶으면 가격이 확 올라간다. 외식, 쇼핑, 여행을 원한다면 많은 값을 지불해야 한다. 독일 학생들은 검소하다. 학업 외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학생들도 많고, 끼니를 저렴하게 과일과 야채만으로 때우는 학생들도 있다. 구멍 나고 해진 가방이나 신발을 신는 학생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졸업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며 만난 독일 동료들도 검소했다. 저렴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도시락을 싸 오는 동료들도 있었다. 소비를 할 때면 깐깐했다. 다른 제품들과 비교하며,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주위에서 좋다고 해도 사지 않았다.
독일 생활 중 가끔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느낀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비가 점점 심해진다는 것이었다. 나의 가족, 친구들부터가 그랬다. 집에 가면 필요 없는 물건들이 너무 많았고, 굳이 소비하지 않아도 될 것을 소비했다. 그 모습을 보는 게 스트레스였다. 나의 일상과 괴리감도 들었다. 나는 독일에서 절약하며 사는데, 한국에 사는 나의 가족들, 친구들은 그러지 않으니 말이다. 물론 사치 부리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 눈에는 모두가 사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나는 한국에 살며 예전과는 달라진 소비문화를 경험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쇼핑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1일 1 쿠팡‘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택배상자용 커터칼이 있고, 국민템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소비하는 일이 일상처럼 느껴진다. 물론 나도 독일에서보다 소비를 많이 한다. 나 스스로 소비하지 않고 휩쓸려 소비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 퇴근 후 오늘은 또 어떤 것을 사야 할지 체크하게 된다.
독일에 있었을 때 소비를 하는 독일 사람들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다른 유럽 사람들은 독일 사람들이 짠돌이라며 비아냥 거리지만 내가 보기에는 소비를 주체적으로 하는 멋진 사람들이었다. 문득 지금 소비가 일상이 되어버린 나를 보며 ‘내가 가난했을 때는 소비를 증오했었지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나는 그때 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지만, 단지 그 이유가 내 소비를 합당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일상이 소비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