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며 사는 삶을 꿈꿨다. 늘 지금 있는 곳에서 떠나고 싶었다. 현실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곳에 대한 동경이 항상 마음속에 있었다. 20살 때 이병률의 '끌림'을 읽고, 이런 삶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임을 강하게 느꼈다. 세계테마기행의 하림이 출연한 '아일랜드' 편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도 했다. 그 시기에는 머릿속이 온통 '떠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독일에 가게 된 이유 중 하나도 항상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독일에서 여행을 많이 했다. 주변에 가볼 만한 곳이 많았고, 다른 유럽 국가로 이동하기도 편리했다. 뮌헨에 있을 때는 기차로 한 시간만 가면 알프스에 갈 수 있어 자주 찾았다. 긴 여름방학 동안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여름이 이렇게 아름답고 여름밤이 이렇게 낭만적인 줄 처음 알았다. 해가 밤 10시에 지고, 밖에서 도시락을 먹고, 공원에서 책을 읽으며, 늦은 밤 호프집 정원에서 맥주를 마셨던 여름이 내 일상이었던 때가 있었다.
방학이 없는 직장인으로 살 때도 여행을 자주 갔다. 그때 여행은 일상을 벗어난 온전한 쉼이었다. 독일은 휴가가 많아 한 번 떠나면 오랜 시간 쉴 수 있었다. 여행을 통해 다시 일상에 활기를 얻었고, 일하면서도 곧 다가올 휴가를 생각하며 힘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독일 생활은 여행이 일상이었던 것 같다. 내가 꿈꾸던 일상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한국에 돌아온 지 거의 1년이 되었다. 바쁘고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오랫동안 여행을 가지 못했다. 얼마 전 남편과 짧게나마 바다를 보고 왔다. 버스를 타고 낯선 터미널에 내리니 비로소 여행이 실감 났다. 숙소에서 바다를 보며 쉬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변해버린 일상, 이제 무엇을 목표로 살아야 할지, 앞으로의 방향, 그리고 독일에서의 일상이 조금 그리웠다. 그러면서 지금 내 삶에 만족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일상을 벗어난 곳에서 비로소 이런 생각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잠시 일상을 떠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그려보며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