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 나서 바로 느끼는 감동 보다 시간이 흐른 뒤 서서히 감동으로 다가오는 영화들이 있다. <마녀 배달부 키키>가 나에게는 그런 영화이다. 문득 키키가 일했던 마을이 생각나고, 하늘을 보면 빗자루를 타고 달리는 키키가 생각이 났다. 바람이 솔솔 부는 넓은 들판에 누워있을 때는 키키가 느꼈을 것 같은 설렘과 삶에 대한 벅참이 나에게도 느껴졌다. 오랜 시간 부모님을 떠나 있으면서, 우리나라를 떠나 있으면서 나는 스스로를 키키 같다고 느꼈다. 그렇게 키키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캐릭터가 되었다. 어디선가 우연히 키키와 관련된 것들을 보면 반갑고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것 같았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고 나의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비교적 다른 친구들보다는 자유롭게 컸다. 부모님이 자녀들의 교육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아파트에서 크지 않았고 주택에서 자라 답답함을 느낀 적도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내가, 내가 있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커서 어른이 되고 싶은 거였다. 나는 소원대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를 다른 도시로 가게 되어 집을 떠나게 되었다.
독립을 하고 나니,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밤에 집에 가는 길이 무서웠고, 삼시세끼 밥을 차려먹는 것도 쉽지 않았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고르는 것부터 해서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그래도 나는 잘 적응해 갔다. 정말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여유가 조금 생기니 용돈 벌이 정도는 스스로 하고 싶었다. 혼자라면 못했겠지만 대학교 때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대학교 근처 식당에서 알바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일하는 거다 보니 사장님께 많이 혼나기도 했다. 혼날 때면 너무 서러워 눈물이 났지만 눈물을 꾹 참고 일에 더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사장님께 인정도 받고 단골손님들도 예뻐해 주셨다. 그렇게 어른이 되고 내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 마음이 벅찼다.
나는 계속해서 자유를 원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그 삶에 더 다가가고 싶었다. 나는 독일이라는 나라로 떠났다. 독일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재밌었지만, 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었다. 독일어도 잘 못했으니 자존감과 자신감은 점점 바닥을 쳤다. 꽤 오랫동안 슬럼프에 빠졌었다. 독일어는 제자리걸음이었고 학교 생활에 적응도 잘 못하는 것 같았고, 내가 독일에 온 목적을 상실해 버린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 나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슬럼프는 서서히 극복되었다. 힘든 일들을 겪고 나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을 많이 겪다 보니 그 안에서 배우는 것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키키가 처음 부모님께 독립을 선언했을 때, 마음에 드는 마을을 발견했을 때, 처음 빵집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했을 때, 슬럼프에 빠졌을 때, 그 슬럼프를 극복하고 일어났을 때 모든 순간이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나도 키키처럼 그 순간들을 다 겪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많은 순간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자유를 원하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키키가 나는 참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