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서 지금의 나를 만든 몇 가지의 중요한 순간들이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순간은 독일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사진을 본 것이다. 그 일은 내 꿈의 시발점이 되었다. 내가 독일에 가게 된 것도 내가 사진을 하게 된 것도 나를 지탱해 준 것도 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덕분이다.
어렸을 적 인터넷에서 노이슈반슈타인 성의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그 사진은 나를 단번에 매료시켰다. 아름다운 숲 속 풍경에 디즈니에 나온 공주가 살 법한 성이 있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 있으면 행복해졌다. 언젠간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꿈을 꾸었다. 현실에 지칠 때면 그 사진을 보며 여러 가지 재밌는 상상을 했다. 내가 가장 빛 날 나이에 나는 그곳에 있겠지... 그곳에 가면 운명처럼 나의 왕자님을 만날 수 있겠지... 나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는 사람이 되겠지... 등등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위로를 받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그곳이 어느샌가 나만의 상상 속 비밀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 사진을 본 뒤로 나는 인터넷에서 사진을 찾아보는 취미가 생겼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풍경 사진들을 많이 찾아보았다. 그러다 여행 사진, 사람들 사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진들 까지 찾아보며 사진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진이 주는 힘이 있었다. 사진은 세상에 존재했던 다양한 순간들을 담아낸다. 회화나 조각처럼 인위적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사진은 삶이면서 예술이다. 현실이면서도 꿈이다. 나는 사진을 보는 것을 넘어서 직접 찍고 싶었다. 사진기 하나를 가지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순간들을 담아내는 사진작가를 꿈꿨다.
사진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나는 해외에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꼭 해외에 가야 하는 명확한 이유는 없었지만 독일에 가야 한다는 막연한 확신만 있었다. 내가 사진을 하게 된 계기가 노이슈반슈타인 성이었고, 그 성은 독일에 있으니 나는 독일을 이유 없이 좋아했고 가장 가고 싶었다. 우선은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독일로 갔다. 독일이 어떤 곳인지 내가 공부할 수 있는 곳인지, 내가 살 수 있는 곳인지 알고 싶었다. 가서는 어학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독일에 가서도 남쪽에 있는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당장 가지 못했다. 내가 어학 했던 곳이랑 너무 멀기도 했고 유럽여행의 첫 시작을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시작하고 싶어서 가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1년 정도 어학을 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계획대로 한 달 동안의 유럽여행을 시작했다. 내가 어학 했던 곳에서 기차를 타고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있는 퓌센을 가는 일정이 유럽여행의 첫날이었다.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순간이 나에게 생생히 남아있다.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다. 드디어 내일이면 나의 꿈의 성을 볼 수 있다는 마음에 참으로 벅찼다. 7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고 퓌센에 도착했다. 퓌센은 독일 남쪽 바이에른 지방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해 질 녘 기차에서 내렸다. 막상 기차에서 내리니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빨리 호스텔을 찾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도를 꺼내 길을 몇 번 헤매며 호스텔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같은 방에 이미 여행객의 짐들이 몇 개 있었다. 샤워를 하고 간단히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오니 한국인 2명이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그들도 내일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보러 간다고 했다. 짧게 인사를 마치고 그다음 날 아침 우리 셋은 성에 가기 위해 호스텔을 떠났다. 성에 가는 버스에는 관광객들도 가득했다. 버스에서 내리고 나는 이제부터는 혼자 가겠노라 하며 한국이 2명과 작별 인사를 했다.
성까지 가는 길을 꽤 가팔랐다. 올라가고 있는데, 벌써 보고 내려온 사람들도 많았다. 날씨가 꽤 쌀쌀했는데, 올라가다 보니 땀이 나서 더웠다. 옆에는 마차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연히 길에 말똥도 가득했다. 그렇게 꿈꿔왔던 성이 바로 앞인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내 상상만큼 로맨틱하지는 않았다. 힘들고 덥고 냄새가 났으니 말이다. 도착하니 상상하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공사 중인 곳도 있었고, 날씨도 우중충했다. 사람들은 너무 많았다. 사진으로 본 성은 사실은 좀 멀리서 찍은 사진인데 나는 바로 코앞에서 보니 사진 속에 있던 성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그래도 많이 실망하지 않았다. 표를 끊고 성의 내부를 구경하고 성에서 보이는 호수, 알프스 산을 보았다. 내부 구경을 끝내고 노이슈반슈타인성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인 마리엔 다리로 이동했다. 협곡 사이를 이은 다리라 꽤 흔들렸다. 그 다리 중간에 가니 내가 사진 속에서 봤던 바로 그 풍경이 펼쳐졌다. 순간 나는 울컥했다. 다른 관광객들에게는 그냥 아름다운 성이지만 나에게는 아주 특별했던 성이었다. 내가 꿈을 꿀 수 있게 해 주었고, 독일에 올 수 있게 해 주었고, 사진작가라는 꿈을 꿀 수 있게 한 성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상상했던 것처럼 그곳에서 왕자님을 만난 것도 아니었고, 햇살이 아름답게 비친 성의 모습을 본 것도 아니었고, 푸르른 나무, 파란 하늘이 펼쳐진 완벽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결국 이곳에 내가 실제 있다는 것이, 내 두 눈으로 직접 그 사진에 있던 성을 봤다는 사실이 나를 벅차게 만들었다.
유럽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후 나는 다시 마음을 먹고 독일에 나왔다. 나와서 독일어 시험을 보고 사진학과에 가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좋은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뮌헨으로 학교를 가게 되었다. 가까이 있어도 자주 가지는 못했다. 한동안 그 성도 잊고 바쁘게 살았다. 처음 그 성에 간 후로 두 번 정도 더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갔었다. 그것도 손님이 올 때나 방문했었다. 갈 때마다 그 성에게 자주오지 못해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를 이곳으로 이끌어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내가 꿈을 꿀 수 있었고, 꿈을 실현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한국에 오니 아주 가끔 그 성이 생각이 난다. 처음 그 성을 보기 위해 걸어갔던 그 길 기차에 내렸을 때 마셨던 공기, 버스에 있었던 관광객들의 표정들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나의 꿈의 시작이었던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나는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