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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희 Jul 06. 2023

초등학교 한국어교실에서 한국어를 한 학기 가르쳐보니..

G초등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한국어를 지도했다. G초등학교가 있는 지역은 고려인이 모여 사는 곳이다. 고려인이 들어오기 전에는 중국 사람들이 많이 거주했었다. 덕분에 전국에 양꼬치가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연예인 정상훈이 "양꼬치엔 칭다오"를 외치기 전부터 이곳에서 자주 청도맥주에 양꼬치를 즐기곤 했었다. 


중국인 수가 줄더니 고려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거리 풍경도 조금씩 바뀌어 갔다. 러시아 식료품점, 식당, 빵집이 거리를 채웠다. 러시아 빵집에서는 크고 저렴하며 달지 않고 고소한 러시아 빵을 살 수 있다.


현수막은 한국어보다 러시아어가 먼저
러시아 빵집이 있는 거리


이 마을에 있는 G초등학교는 전교생의 70%가 고려인이다. 한 학년에 두 학급씩, 전교 12개 학급이 있는 작은 학교에 오전 한국어 교사 다섯 명, 방과 후 한국어 교사 세 명이 있다. 한국어 교실은 러시아권 학생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우크라이나에서 온 고려인 자녀들 말이다.


일주일에 이틀, 하루에 4시간씩 한국어를 가르쳤다. 사실 G초등학교에서 일을 시작해 보겠다고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있었다. 중국어 강사 경력 대부분을 평생학습 기관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수업한 데다, 기관에서 개설한 수업에서 중국이 뭔지도 모르고 엄마 손에 이끌려 온 아이들을 지도하다가 기절할 뻔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초등학교 교사들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한국어교사 경력이 일천하여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일단 시작해 보자 마음먹었다. 


수업 첫날, 마음 단단히 먹고 수업에 들어갔건만 10명 중 7명이 남학생인 3, 4학년 꼬마 녀석들 수업에서 말 그대로 혼이 쏙 빠졌다. 모든 학생이 같은 언어권 학생인 탓에 끊임없이 러시아어로 웃고 떠들고 싸웠다. 학기 내내 각종 게임, 유인물 등 주의를 모을 수 있는 수업 자료를 준비하느라 꽤나 고생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한 학기가 끝난 지금, 나의 러시아어가 늘었다. 5만 원을 결재한 러시아어 온라인 강의는 예상했던 대로 4과 이후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수강기간이 끝나버렸다. 하지만 러시아어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수업 시간에 큰 도움이 되었다. 도무지 집중을 못하여 산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날에는 러시아어를 묻고 대답하며 칠판에 더듬더듬 쓴다. 그러면 선생님에게 가르쳐 주려 칠판에 집중을 한다. 열 마디 잔소리보다 분위기 전환에 효과적이다. 


"사디시" "디하" "니엣 스마뜨리체 핸드폰" 

각각 "앉으세요." "조용히 하세요." "핸드폰 보지 마세요."라는 뜻이다.  도무지 진정이 되지 않는 남자아이들에게 한국어 지시어가 효과가 없을 때가 있다. 알아듣더라도 임팩트가 없다. 마치 외국어 욕은 욕인지 알아도 그들만큼 화가 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럴 때는 러시아어가 훨씬 효과적이다. "말라디에쯔(잘했어)"라는 칭찬의 말도 마찬가지이다. 가끔 러시아말로 하면 아이들이 더 기뻐했다. 


수업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당연히 뿌듯할 때도 많았다. 학교 수업에 필요한 한국어인 '학습도구 한국어' 수업을 맡았기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었음에도 5, 6학년 아이들은 비교적 열심히 해서 교재 절반을 진도 나가겠다는 목표에 도달했다. 수업 시간에 등장하는 어휘를 쏙쏙 흡수하는 '빅토리아'를 보면서, 독해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하는 '아나스타샤'를 보면서 뿌듯해했다.


학기 초에 말썽 피우던 '디얼'이 어느새 다른 친구들에게 조용히 하라며 수업에 의욕에 보일 때, 수줍음 많던 '알렉'과 '밀라나'가 수업이 끝나면 포옹을 하며 인사할 때, 지난 학기에 한국에 왔다는 '아르촘'이 단어퍼즐 문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했다.


러시아 문화에 관심이 생겼다.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이라는 다른 나라에서 왔는데 언어적 이질감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며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일리야의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책을 읽어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몇 가지 이유를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가 소련 정권이 모든 학교에서 똑같은 교과서와 똑같은 방송을 통해 표준화된 러시아어를 사용하도록 관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 한국에 일하러 다녀간 사람이 그렇게 많은지도 유튜브 채널인 '곽튜브' 우즈베키스탄편을 통해 알게 되었다. 겨울에 우즈베키스탄 한 번 가볼까 싶어 사마르칸트까지 항공권을 검색했다가 경유임에도 불구하고 120만 원에 달하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기도 했다. 오늘은 '디얼'이 좋아한다는 펠메니(만둣국)를 먹어보러 러시아 식당을 찾아갔다. 앞으로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차례로 하나씩 먹어보리라.


좌: 펠메니 / 우: 비고자


학교 복도에서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아이들은 고려인 아이들임을 알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인사말 한 마디 건네기 어색해하는 우리네와는 달리 나를 처음 보는 아이들도 인사를 잘한다. 학기 초에는 3학년 어린 남자아이들이 친구와 만났을 때 서로 악수하는 모습을 서너 차례 목격했는데 생소하면서도 귀엽다. 처음 "선생님, 오늘은 기분이 어때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는 '왜 내 기분을 묻지?' 살짝 당황하기도 했으나 우리 문화에서의 "식사했어요?"와 같은 인사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G초등학교에서의 한 학기, 결코 쉽지 않았지만, 방학을 학수고대했지만, 종강을 하고 방학에 들어간 지금 대단히 행복하지만, 몇 시간씩 수업자료를 만들면서 노하우도 생겼고, 러시아어도 배우게 되었고, 러시아 문화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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