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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봄, 나의 계절

그 속에 나는 너른 들판

by Ander숙

지금 나의 계절은 겨울을 지나 이른 봄이다. 조금씩 길어진 해의 길이만큼이나 대지에도 온기가 스며든다. 난 그 속에 너른 들판이다. 아직은 겨울의 티를 벗어내지 못해 황량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씨앗이 숨겨져 있다.


봄은 새싹의 계절.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밭이 아니라 그저 들판인 나는 무엇이 피어 나올지 몰라 매일 기다리는 중이다. 고개를 내미는 새싹들은 어떤 얼굴일까. 지난봄에 싹을 틔웠다가 추운 겨우내 땅 속 깊이 뿌리를 숨긴 채 봄을 기다린 녀석도 있을 것이고, 가을에 씨를 만들어 내어 낙엽 밑에 조심 숨어있던 녀석도 있다. 또 어떤 씨앗은 벌써 십 년도 전에 내 대지에 찾아왔지만 너무 깊이 있어서 싹 틔우지 못하다가 여러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을 맞으며 땅이 뒤집히고 또 뒤집혀 이제야 햇살과 빗물을 맞으며 하늘을 보게 되는 녀석도 있을 것이다.


봄은 햇살의 계절.

차가운 겨울 기운을 봄 햇살 아래 말린다. 가족을 떠나보내며 힘들었던 시간, 서로를 위로하느라 자신은 돌보지 못했던 마음, 삶에 대한 허무, 유한한 삶을 어떻게 보내야 행복할지에 대한 고민, 그런 생각들을 서로 겹치지 않게 하나씩 떼어내어 들판 위에 펼쳐놓는다. 봄볕과 살랑이는 바람에 이제는 마음도 몽글몽들 간질간질해지겠지.


봄은 산책의 계절.

자꾸만 나가고 싶다. 벌써 봄마중 나온 동네 꼬마들이 높은 소리를 내며 뛰어논다. 같은 길을 걸어도 매일의 풍경이 바뀌는 봄. 그러니 매일 나올 수밖에. 꼭 다물었던 꽃망울도 한 바퀴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보면 퐁~ 하고 터져있다. 꽃이 피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봄. 참았던 것들이 결국 터져 나와 알록달록 물들이는 계절. 내 꾹꾹 참아온 그 마음들을 피워보기 위해 오늘은 나갈 계획을 세워본다. 집에서 하는 계획은 공상에 그치고 마니깐.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라는 봄. 이 계절 속에 나의 들판은 어떻게 가꾸어질까. 그저께 날아온 민들레 홀씨에게도 터를 내어주어 노란색을 물들이고, 몇 십 년 전에 내 마음에 깃들어 있던 그 씨앗도 한자리 허락해서 조화롭고 풍요로운 들판을 만들고 싶다. 나비와 벌이 찾아오고, 도시락과 돗자리를 가져온 사람들에게도 한낮에 휴식이 되어주는 그런 들판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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