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혼의 구슬... 아니 돈.
“다들 많이 기다렸지? 그럼 이누야샤 님의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어릴 적 학교를 다녀오고 TV를 켜기만 하면 나오던 만화가 있었다. 한 여고생이 과거로 돌아가 여러 동료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는 그런 이야기. 하도 재방송을 많이 해서 주제곡이 시작되는 부분의 내레이션을 다 외워버릴 정도였다. 아무튼 이 유쾌한 동료들이 모험하며 찾던 것은 ‘사혼의 구슬조각’이었다.
사람이나 요괴들, 심지어 물건까지도 이 구슬 조각을 얻은 이들은 가지고 있던 능력이 강해지기도 하고, 마음을 잃어버린 괴물이 되어버리기도 하였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 서로 속이고 다투고, 죽이기까지 하는 기묘한 조각. 그렇게 변해버린 이유가 구슬 조각의 힘이었는지, 조각을 가진 이의 원래 성정이었는지, 아니면 둘 다 어느 정도 요인이 있는 건지.
가진 자에게 힘을 갖게 하고, 마음을 어지럽히고, 때로는 그로 인해 여러 사건이 벌어지는 구슬 조각. 이것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 것이 현실에도 있지 않나 싶다. 돈. 너무 뻔한 답이긴 하지만. 만화에서 조각을 모으는 것처럼 나도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는데, 만화에서 모으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돈이 모이지는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부자가 되려면, 돈을 모으려면 일단은 절약하는 생활을 해야 하며, 저금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하나둘 아낀 돈을 돼지저금통에 넣고, 모인 돈을 은행에 맡기고 조금씩 불려가며 부자가 되자! 금리가 높았던 예전에는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1%도 채 되지 않는 저금리 시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하루는 다음과 같다.
출근. 오늘은 예금이 만기가 되신 대상자가 몇 분 계신다. 오시자마자 ‘예전에는 1억을 넣어두면 생활비 정도는 나왔는데 요새는 금리가 낮아도 너무 낮다’고 불평하시는 할머니 고객님. 코로나 때문에 경기가 어려워서 그렇다는 둥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는 둥 다양한 이유를 들어가며 고객님을 애써 달랜다.
현재(2020년 11월) 우체국의 기본 예금이율은 0.65%(1년, 만기 이자 지급식). 1,000만 원을 1년 동안 예금하면 65,000원이 이자로 나온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이자인 65,000원을 그대로 주느냐? 아니다. 여기서 이자에 대한 소득세 14%와 지방소득세 1.4%를 빼야 한다. 빼고 남은 이자는 54,990원. 금리가 지금처럼 소수점 뒤가 아닌 두 자릿수였던 시절을 사신 고객님들에게 지금 금리는 어떤 느낌일까?
“다른 은행은 이 정도나 주는데 왜 너희는 이것밖에 안 주냐.” 하시는 고객님의 한탄. 보통 시골에 있는 금융기관들은 단위농협이나 신협, 축협, 또는 새마을금고. 이런 금융기관은 시중은행보다 기본 예금이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속된 말로 정말 게임이 되지 않는다. 장점을 강조하며 시도한 여러 번의 권유. 그러나 고객님은 수표를 들고 다른 곳으로 떠나가신다.
점심시간.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와 함께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밥을 먹든지 핸드폰을 보든지 둘 중 하나만 하면 좋을 텐데. 친구는 숟가락을 입에 문 채로 손에 든 핸드폰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잠시 뒤, 짜증을 내며 그대로 가방에 던져 넣어 버린다. “아. 또 올랐네. 그때 샀어야 했는데 왜 안 샀었지?” 애먼 국밥만 휘휘 저어대는 친구. 무슨 말인가 했더니. 친구와 만나서 하는 이야기 대부분은 주식이다.
요새 내 주위를 보면 대부분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식에서 1억을 벌려면 2억을 투자하면 된다느니, 주식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느니. 분명히 그런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자랐던 것 같은데.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더니, 패가망신의 지름길은 어느새 가지 않는다고 하면 의아하게 쳐다보는, 그런 큰 대로가 되어 버렸다.
이런 시대에 우리 같은 개미들이 돈을 벌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며 다시 핸드폰을 꺼내는 친구. 나는 다음에도 이런 식이면 같이 밥을 못 먹는다고 불평한다. “주식 해봤자 우리 같은 개미들은 큰돈을 못 만져.”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며칠 전 알기 쉬운 주식 투자 같은 이름의 책을 여러 권 구입 한 건 친구에게 비밀로 한다.
퇴근 후. 기약 없는 적금에다가 5,000원을 투자하러 관사 앞 동네 마트로 향한다. 마트에 무슨 적금상품이냐고? 가입자 수에 비해 아주 적은 만기 대상자. 언제 돈을 탈지도 얼마가 손에 들어올지도 알 수 없다. 매주 토요일 오후 8시 45분에 만기 대상자를 발표하는 그 적금의 이름은 바로 로또. 당첨 확률이 벼락을 두 번 맞을 확률보다 낮다지만 매주 꼭 어디의 누군가는 당첨이 된다. 그게 내가 아닌 게 아쉽지만.
처음에 말했던 만화로 돌아가 본다. 유쾌한 동료들은 흩어진 사혼의 구슬 조각을 모아서 무엇을 하려 했을까? 조각을 모아 온전한 구슬을 만든 후, 그걸 정화를 하려 했었는지 봉인을 하려 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구슬이 악한 자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떠난 모험 이야기였으니 둘 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듯하다. 긴 모험 끝에 구슬을 완성한다면 이들은 흔들리지 않고 본래의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구슬 조각으로 인해 타락한 자들처럼 똑같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큰돈을 얻게 된다면 과연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여러 생각을 하다가 마트에 도착한다. 모르겠다. 지금보다는 행복하겠지. 급하게 생각을 마무리하고 직원에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로또 자동 5,000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