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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엇비슷 Dec 23. 2020

우편차는 어둠을 헤치고

내 택배는 어디에

우체국에 오시는 고객님들이 가장 많이 하시는 말이 있다.


“이거 내일 배달되죠?”


하루에 고객님이 100명 정도 오신다 하면 거의 90명 이상이 물어보시는 질문. '웬만하면 거의 내일 배달이 되기는 하지만, 이게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확실하지는 않다'라고 매번 답변을 드리는 편이다. 매일매일 똑같은 질문과 똑같은 답변. 늘 반복되는 모습을 지켜보시던 국장님은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예전에도 비슷한 질문을 받으셨지만 그때는 질문의 끝이 달랐다고.


“내일 배달되나요?” → “내일 배달되죠?”


이틀이나 사흘, 배이 늦었던 예전에는 내일 배달이 되면 좋겠다는 기대감과 가능성의 의미가 담긴 ‘되나요’라는 수동적 어미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배송이 빨라진 요즘은 당연히 내일 들어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되죠’라는 능동적 어미로 변화했다고. 오오. 놀라운 언어의 변천사.


하긴 그도 그럴 것이 배송은 점점 빨라지는 추세다. 오늘 보낸 택배가 내일 도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고, 오늘 주문하면 새벽에 배송을 해주는 곳도 있고, 또 어디는 몇 시 이전에 주문하면 당일 배송까지 해준다니. 오오. 놀라운 기술의 발전.


가끔 부모님이 계신 본가에 갈 때가 있다. 야심한 밤이 지나고 동이 조금씩 터오는 새벽. 밖에 나가려고 문을 여는 순간 문 뒤에 무엇인가 툭하고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밖은 온통 깜깜해서 잘 보이지 않는다. 문을 조금씩 열어본다. 바닥에 뭔가가 끌리는 소리.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앞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 본다. 아. 정체는 새벽에 배송된 물건들. 어머니가 주문하신 모양이다. 안도하며 계단을 내려가다 종종 어둠 속에서 택배기사님과 마주치기도 한다. 새벽을 깨우는 외마디 비명.


우체국에서 접수된 물건들은 우편차에 실려서 우편집중국이라는 물류센터에 도착하고 다시 물건이 배달되는 우체국으로 옮겨진다. 서울에서 부산. 강릉에서 광주 등 거리가 먼 경우에는 대전에 있는 중부권광역우편물류센터라는 더 큰 곳을 거쳐가기도 한다. 배달우체국에 도착한 물건들은 배달되는 구역별로 구분된 후 집배원의 오토바이나 우편차에 실려 마지막 목적지로 향한다. 우체국도 새벽 배송만큼은 아니지만 웬만하면 오늘 접수한 물건이 내일 배달되는 편이다.


우리 우체국은 우편차가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우체국이다. 우리 우체국의 발송 마감 시간은 오후 5시 40분. 우편차는 그 시간에 도착해서 물건을 싣고는 집중국으로 떠난다. 우편차가 도착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당일에 물건을 보내려는 고객님들은 시간을 꼭 지켜주셔야 한다.




“아직 안 끝났죠?”


오후 5시 35분 정도. 마감을 준비하고 있는 우체국으로 고객님이 손수레를 끌고 다급하게 들어오신다. 손수레에 담긴 큰 상자 네 개. 네 개면 바로 접수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상자를 열어보니 상자 안에 작은 상자들이 한가득. 백 몇 개의 택배를 오늘 당장 보내야 된다고, 내일 보내면 절대 안 된다고 엄포를 놓으신다. 조금만 더 빨리 오셨으면 정말 좋았을 텐데. 푸념할 시간도 없다. 키보드 위를 신나게 날아다니는 내 손가락들. 바삐 움직이는 날 바라보시며 태평스럽게 이야기하시는 고객님. “이야. 빠르다 빨라. 어릴 때 게임을 많이 해서 빠른 거 아니야?”... 대답해드릴 시간 없다.


우편차는 55분에 출발했다. 원래 출발해야 하는 시간보다 15분이 늦어진 것. 겨우 15분 정도인데 그거 가지고 그러냐는 고객님들이 가끔 계신다. 하지만 그 물건 하나로 인해서 우편차에 실린 다른 물건들의 배달시간도 덩달아 늦어지게 된다. 집중국이나 물류센터에 빨리 도착하지 못하면 구분 작업이 늦어지게 되고, 예정되어 있던 시간에 도착을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고객님께 다음에는 꼭 빨리 오셔야 한다 여러 번 신신당부를 했지만 과연 빨리 오실는지. 우편차 기사님은 늦어진 시간을 당신이 빨리 달려서 메꾸면 된다고, 걱정 말라고 하신다.


“항상 정해진 대로 제시간에 출발하면 영 지루하고 재미없지. 오늘처럼 이런 일도 생기고 저런 일도 생겨 봐야 적당히 스릴도 있고 재밌는 거 아니겠는가.”


그래도 이런 스릴은 필요 없을 것 같다 하는 내 등을 두드리시며 크게 웃으시던 기사님. 지금 이 시간도 트럭 뒤에 물건을 가득 싣고 도로 어딘가를 달리고 계시겠지. 매일 저녁, 밤 그리고 동이 터오는 새벽까지. 그 많은 시간들을 도로 위에서 보내시는 그 모든 기사님들께 이 지면을 빌려 참으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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