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밖에서 구루마.. 아니 접이식 손수레가 끌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가보니 한 할머니께서 큰 스티로폼 박스를 끌고 오고 계셨다. 창구 옆에 있는 대형 저울까지 수레를 가져온 뒤 무게를 재러 박스를 들어 올린다. 윽. 아니, 뭐 이리 무거워? 저울에 표시된 박스의 무게를 본다. 36kg. 맙소사.
"아이고! 뭘 이리 많이 담으셨어요?"
"김치! 우리 아들 줄라고"
어디서부터 손수레를 끌고 오셨는지 땀을 비 오듯 흘리고 계신다. 잔뜩 지친 얼굴이셨지만 아들 얘기를 하자 환하게 웃으시는 할머니. 그 모습을 따라 함께 웃으며, 무게가 기준을 많이 초과해서 지금 이대로는 아들에게 김치를 보낼 수 없다는 말씀을 어떻게 드리면 좋을까, 내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만 간다.
우체국 택배(등기소포)의 일반적인 접수 기준은 다음과 같다.
크기는 가로+세로+높이의 합입니다. 중량은 최대 30kg 이하, 크기는 최대 160㎝이하입니다. 한 변의 최대 길이는 100㎝이내에 한하여 취급합니다. 중량/크기 중 큰 값을 기준하여 요금이 적용됩니다.
중량은 최대 30kg 이하, 크기는 최대 160cm 이하입니다.
최대 중량이 30kg라 하지만, 그 끝까지 채워서 보내시는 분들은 거의 없다. 보통 20kg에서 많으면 23, 24kg 정도. 스티로폼 박스는 온도 유지도 잘되고, 외부 무게에도 꽤 잘 버틴다. 그러나 그 자체의 무게에 취약한 편이라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의 중량이 지나치게 무거운 경우, 들다가 박스가 반으로 부서지는 경우가 있다. 어떻게 그게 반으로 부서지는지 알고 있는가. 나도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여름이 다가오던 어느 날. 한 고객님이 생선을 친구들에게 보내신다며 스티로폼 박스 여러 개를 가져오셨다. 다른 것들은 괜찮은데 제일 마지막 박스는 그냥 눈으로 보기에도 이미 여러 번 사용해서 너덜너덜해 보였다. 다른 박스를 쓰는 게 낫지 않을까 말씀드리는 나를 보며 고객님은 젊은 사람이 걱정도 많다며 크게 웃으시며, 이렇게 보여도 튼튼하다며 들어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하셨다. ‘그러지 않으시는 게 좋을 텐데 ‘라고 생각하자마자 뚝하고 반으로 동강 나는 박스. 고객님의 당황한 표정과 함께 주위로 퍼지던 그 비릿한 냄새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한 변의 최대 길이는 100㎝이내에 한하여 취급합니다.
보내려는 물건의 가로나 세로 길이가 1m가 넘으면 우체국에서는 접수를 할 수가 없다. 내가 앉아 있는 창구는 들어오는 문과 바로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님이 오시는지, 무엇을 들고 오시는지, 어디까지 오셨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차가 오는 소리가 들린 것 같아 눈을 들어보니 트럭의 앞은 벽에 가려 보이지 않고 꽁무니만 겨우 눈에 보였다. 이윽고 트럭에서 내리신 고객님이 뒤에서 물건을 천천히 꺼내신다.
조금 긴 물건이구나 생각했는데 아무리 꺼내도 끝이 보이지 않는 물건. “1미터는 충분히 넘은 거 같은데.” 가만히 보고 계시던 국장님이 밖으로 나가서 고객님과 대화를 하신다. 잠시 뒤 고객님은 떠나시고 국장님은 들어오시고. 직접 만드신 나무 탁상이었다고 하셨다. 2미터는 족히 넘으셨다고. 그 정도면 다른 택배사에서도 접수가 안 되었을 텐데. 어디에서 접수를 하셨는지, 그냥 직접 배달하셨는지,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중량/크기 중 큰 값을 기준하여 요금이 적용됩니다.
산과 들에 푸른 새싹들이 조금씩 돋아나는 봄의 초입. 한 고객님이 꽃이 몽글몽글 피어있는 나뭇가지를 들고 우체국으로 들어오셨다. 문으로 함께 들어온 봄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은은한 꽃향기. 꽃도 예쁘고 향기도 좋지 않으냐 물어보시는 고객님. 정말 좋다고 맞장구를 쳐드린다.
“이걸 서울에 있는 형님한테 보내려고 하는데요.”
“... 네?”
가지의 크기가 커서 작은 박스에 담기는 무리였다. 가장 큰 우체국 5호 박스(크기 120cm)에 신문지를 구겨서 채워 넣고 가지가 부서지지 않게 조심스레 집어넣는다. 가지를 다 넣고도 튀어나온 부분이 많아 박스 하나를 덧대어서 마무리를 했다. 11,000원. 무게는 3kg도 안되지만 크기가 커서 요금이 꽤 나왔다. 요금은 상관없다고 말하시며 고객님은 검은 매직으로 박스 위에다 크게 글을 적으셨다.
‘형님! 봄이 왔어요!’
여러 번 칭칭 둘러 감으신 테이프를 칼로 뜯고 스티로폼 박스를 열어본다. 배추김치도 한가득, 열무김치도 한가득, 무김치도 한가득. 여러 가지김치들이 보기 좋게 담겨있었다. 양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작은 슈퍼에서 사 온 새 스티로폼 박스에 비닐을 여러 겹 깔고 김치를 옮겨 담는다. 담그신 지 얼마 되지 않으신 김장김치라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열무김치를 옮기다가 무의식적으로 베어 먹을 뻔했다. 아. 오늘 저녁은 김치 특집이다. 볶은 김치에 김치볶음밥에 김치찌개를 먹어볼까.
가름이 끝나고 박스 각각의 무게를 재본다. 17kg와 19kg. 깔끔하게 반으로 떨어지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한 곳으로 배달될 거니까. 이음부를 테이프로 여러 번 감고 위아래를 십자 모양으로 둘러 감는다. 이 정도면 튼튼하겠지. 오늘 참말로 수고했다며 내 어깨를 두드리시는 할머니. 내일도 수고해달라고 말씀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