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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엇비슷 Dec 15. 2020

이름표를 붙여 택배상자에♪

확실한 주소가 맞는지 보고♬

예전 광고 중에 그런 광고가 있었다. 한 남자가 의자에 걸터앉아서 말한다. "비트박스를 잘하려면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 북치기, 박치기." 그리고 이어지는 멋진 비트박스. 어린 나도 그걸 본 뒤 분명히 두 가지를 기억했지만, 진짜 기억만 하고 연습은 안 한 탓이었을까. 내가 하는 비트박스는 비트박스가 아닌 침투성이... 박스가 되었다는 건 비밀.


아무튼 택배를 보낼 때도 두 가지를 잘 기억하면 좋다. 주소와 포장. 오늘의 이야기는 주소에 관한 이야기다.


예전에 무한도전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도로명주소를 소개한 적이 있다. 다른 멤버들이 몰디브(?)와 북극(?)에서 휴양을 즐기는 동안 한 멤버는 '스타 다큐 아름다운 길'이라는 가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촬영 중 미션을 위해 그에게 주어진 주소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869 - 지번주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마로 195 - 도로명주소


위의 두 주소는 둘 다 같은 장소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두 주소 중에서 도로명 주소를 보고 더 길을 잘 찾았다며 도로명 주소의 이점을 강조하던 공익성 에피소드. 도로명 주소는 2009년에 전면 개정되었고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하지만 고객님들이 편지나 택배를 보내려고 써오시는 주소들을 보면 지번 주소와 도로명 주소를 병행해서 쓰신 경우가 많다. 특히 어르신들은 아직 지번 주소가 더 익숙하신 모양이다.


사람의 이름이 성씨와 이름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지번주소는 동, 리와 지번(地番), 도로명 주소는 도로명과 건물 번호로 이루어져 있다. 두 구성요소가 제대로 결합되어야 정확한 주소가 탄생한다. 하지만 빌라나 아파트의 경우, 주소를 작성할 때 지번이나 건물 번호 대신에 빌라 혹은 아파트의 이름을 그대로 쓰시는 경우가 많다.




할머니가 큰 포대자루를 손수레에 담아 들어오신다. 딱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자루. 입구 부분이 헐거워 보여 테이프로 단단히 묶고 박스 안에 넣는다. 할머니는 따님한테 보내시는 쌀이라고 하시며 주소가 적힌 쪽지를 건네주신다.

'서울 목동 아파트 000동 000호'


정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목동에 아파트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닐 텐데. 할머니께 ‘이곳에는 아파트가 많이 있어서 주소가 더 자세하게 나와야 한다. 이렇게는 보내면 따님이 쌀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다’고 설명드리자 "그러면 우리 딸이 거기 산다니까 전화 한번 해봐요." 하며 오래된 2G 핸드폰을 내게 내미신다. 예전에는 썼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버튼을 꾹꾹 누르는 핸드폰은 오랜만이다. 최근 전화기록을 살펴본다. '막둥이' ‘막둥이’ ‘막둥이’


쌀을 받는 사람이 막둥이가 맞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신다. 막둥이에게 전화를 건 뒤 할머니에게 다시 드린다. 신호가 길어지자 초조해하시다 목소리가 들리자 밝아지시는 표정.


"어! 나 지금 우체국 왔는데 전화 좀 받아봐라!"


용건만 말하고 바로 전화를 내게 주신다. 여기는 우체국이다, 지금 어머니께서 따님께 쌀을 보내려고 우체국에 오셨다, 그런데 주소가 확실하지 않아 연락드렸다고 차근차근 전해드린다. '쌀 그거 안 보내도 되는데 또 보내신다.' '몸도 안 좋은데 그냥 쉬고 계시지.'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주소를 불러주시는 고객님. 전화를 끊고 새로운 쪽지에다 따님 주소를 새로 써드려서 할머니께 드린다. 다음에는 여기로 보내시면 된다 하니 종이를 여러 번 겹쳐서 옷 안감 주머니에 단단히 넣어두신다. 접수가 끝나고 고맙다며 여러 번 고개를 숙이며 가시는 할머니. 덩달아 나도 할머니가 나가실 때까지 거듭 인사를 드린다.



아파트나 빌라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경우는 그래도 괜찮은 편에 속한다. 한 고객님이 쇼핑백 가득 청첩장을 가지고 오셨다. 귀한 딸의 결혼이라고 기뻐하시는 고객님. 하지만 나는 적힌 주소들을 보고 기뻐하지 못했다. 무슨 부락 아무개, 무슨 마을 누구. 마을이랑 받는 사람 이름만 적혀 있는 수많은 청첩장들. 배달이 제대로 되려면 주소를 더 자세하게 적어야 된다고 말씀드리니 당당하게 말씀하시는 고객님.


"이렇게 적어도 잘 가던데? 집배원이 잘 보내준다!" 어차피 한 마을로 가는 거니까 집배원이 다 알아서 해줄 거라고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고객님. 아닙니다. 괜찮지 않아요. 전혀 괜찮지 않습니다.


원래라면 정당한 주소가 적혀있지 않기 때문에 주소불명으로 반송이 원칙이다. 하지만 오래 그 마을을 담당하는 집배원은 어디에 누가 살고 그 사람 이름이 누구인지 대략적으로는 알고 계신다. 때문에 마을과 이름만 적혀 있더라도 알고 있는 사이니까 그냥 선의로 배달해주시는 경우도 있다. 배달이 당연한 게 아니다. 그러니 휴가나 전출 등 여러 이유로 다른 집배원이 그 지역을 담당하시는 경우 제대로 된 주소가 적혀있지 않으면 그냥 반송 처리, 돌려보내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김춘수<꽃>중에서


사람의 이름은 제대로 불러 주면서, 집의 이름인 주소는 왜 제대로 불러주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보내기 위해 정성스럽게 포장한 귀중한 물건들. 그런데 거기에 붙은 집의 이름표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면. 배송도 더디게 되고, 보낸 사람도 받는 사람도 답답하게 되고, 분명 집도 슬프지 않을까. ‘그건 내 이름이 아니에요.’


다음에 편지나 택배를 보낸다면

집의 그 자리와 장소에 알맞은

제대로 된 집의 이름을 불러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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