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는 가장 강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혼자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사람
참 기막힌 설명이었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당연히 사람들과 어울려서 먹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인 것을. 이런 본능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참으로 고독할 수 있는 가운데 고독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과연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어울리고 싶은 마음, 함께 하고 싶은 마음, 소속되고 싶은 마음은 우리의 가장 본능적인 면 중에 하나입니다. 군집 생활을 하는 동물에게 무리에서 이탈 당하는 것은 생존을 빼앗기는 것과도 같기에 우리는 필사적으로 남에게 매달리고 함께 있으려고 하지요. 고독은 절체절명의 죽음과도 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욱 홀로 존재할 줄 아는 사람이 귀하게 느껴집니다. 자기를 잃지 않고도 홀로 있을 수 있는 사람들. 때로는 홀로 있기를 자진해서 선택하는 사람들. 오히려 홀로 있으면서 자기에게 철두철미한 사람들. 오래됐지만 전혀 낡지 않은 단어, '신독'이 떠오르는 지점입니다.
신독의 원래 뜻은 이렇습니다.
신독(愼獨)
삼갈 신, 홀로 독
자기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지는 일을 하지 않고 삼감.
혼자 있을 때에도 자기를 돌아본다는 뜻으로 스스로 인격 완성을 닦는 것을 말합니다. 홀로 있을 때도 치우치지 않고 올바른 몸과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는 도리에 어긋나지 않겠지요. 그런데 신독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면 내 마음대로 다른 식의 해석이 생각납니다.
'신'자를 '몸 신 身'으로 바꾸면 내 몸과 홀로 있다는 뜻이 됩니다. 또는 '신 신 神'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면 신 앞에 홀로 있다는 뜻도 됩니다. 내 몸과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혼자 있는 상황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혼자 있을 때는 누구나 자기 몸과 함께 존재하니까요. 내 몸으로써 그리고 내 몸의 주인으로서 있을 수 있다면 원래의 신독의 의미를 완성하는 첫 걸음이 되겠지요. 심리치료 분야에서도 요새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몸의 중요성. 신독(身獨)입니다.
신 앞에 홀로 있다는 표현은 실존철학과 치료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인생무상. 홀로 태어나서 홀로 죽는 인간의 실존을 신 앞에 홀로 선 인간으로 표현합니다. 내 몸만 가지고 혼자 존재할 때 우리는 절대자 앞에 선 유한한 인간이 됩니다. 그러니 근신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나의 잘잘못을 성찰하고 고백하고 그럼에도 계속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되기로 선택합니다.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인간에게 죄를 고백하던 현장은 축복이 쏟아지는 성소로 변하기도 합니다. 천주교의 고해소에서도 그 원형을 볼 수 있지요. 고해소는 신독(神獨)하는 공간입니다.
모든 인간의 불행은
고요한 방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을 줄 몰라서 생긴다.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우리는 태어날 때도 혼자였고 죽을 때도 혼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둘러쌓여 있었다고 해도 그 경험을 고스란히 겪어낸 것은 나 혼자입니다. 아침에 처음 잠에서 깰 때도 혼자고, 밤에 잠에 빠지기 시작할 때도 혼자입니다. 어차피 혼자인 것을 극명하게 알 때 우리는 고독 속에서도 고독하지 않은 인간이 되지 않을까요? 그는 파스칼의 말마따라 모든 불행을 넘어설지 모릅니다.
우리는 혼자서 내 몸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만을 데리고 신 앞에 홀로 섭니다.
우리는 혼자 삼가며 자기를 단독으로 만나고 완성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