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성경의 한 구절입니다. 인생에서 네 수고로 얻은 것이 무엇이냐, 자연의 섭리가 아니었으면 네가 무슨 수로 목숨을 이어갔겠느냐, 인생에 받은 것들로 가득하지 않느냐, 네가 그리 받았듯이 너도 세상과 이웃에게 나누어라. 이런 의미 같지요. 이런 뜻을 담고 있는 건 비단 성경 구절만이 아닙니다. 조금 더 평이한 표현으로는 이런 노래 가사가 있지요.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위의 말들처럼 우리는 어느 날 세상에 와서 예상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받았습니다. 그중에는 내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지요. 누군가는 더 많이 받고 누군가는 덜 받는 것도 같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함은 시작되지 않았던가? 내가 받은 것이 정말 무엇인가? 내가 거저 받았다고?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되기 시작하면 불편한 기색을 숨기기도 어렵습니다.
흠. 정말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하는 걸까요?
아래는 이런 고민을 나름대로 타파해 본 흔적입니다.
내가 정말로 받았으면 나도 준다고요!
세상살이 팍팍하고 내 마음대로 일이 시원하게 풀리지 않을 때 우리 마음은 이렇게 소리칠 수 있습니다. 뭐 받은 게 있어야 줄 거 아니야, 성인군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 마음도 일견 논리적입니다. 지금 나 먹고사는 게 힘든데 주긴 뭘 주나, 생각이 안 들 수 있나요. 그래서 마음을 더 꽁꽁 싸매고 닫아버리기 쉽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희한한 일이 벌어집니다. 가진 자는 더 가지고, 없는 자는 더 없게 되는 역설이 벌어지지요. 요새 표현으로 하면 벼락거지 쯤 될까요? 받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복이 들어올 구멍을 다 막아 버렸으니 복이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지쳐서 돌아갑니다. 혹은 허구한 날 일이 안 풀렸던 것에 화딱지가 난 나머지 복이 문 앞에서 노크를 했는데도 '또 재수 없게 거지가 왔나 보군. 쳇' 이렇게 생각하고는 복의 엉덩이를 걷어 차버립니다.
받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앞으로도 받기 힘들게 됩니다. 좋은 걸 받아본 적이 없다고 생각하니 앞으로도 좋은 일이 나에게 일어나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설령 좋은 일이 찾아와도 부정적인 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정말로 좋은 일도 도망가게 만듭니다. 후에 그것이 정말로 좋은 일이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후회를 하고 다시 한번 자기만의 프레임을 확고히 합니다. 내 인생에 역시나 좋은 일은 없는 거야! 찾아온 복조차 차버린 자기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며 자기 인생을 별 볼일 없게 만듭니다.
이런 이런. 이런 식으로 가면 마음도 거지가 되는 것이 순식간입니다. 마음에서도 물질에서도 벼락거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이 팍팍해지려고 할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야말로 마음의 문을 팍팍 열어제쳐야 합니다. 하지만 상처받고 한숨이 절로 쉬어지는 가운데 어찌 가슴을 열 수 있겠어요? 참 쉽지 않은 일이지요.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보통의 용기가 아니지요. 이제까지의 절망과 낙담, 상처 속에서도 마음을 연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첫 문장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나는 진정을 받고 있나요? 받은 게 없다고 생각하면 마음을 열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다고 생각하며 굳이 내가 받은 것들을 찾아내면 조금은 마음을 여는 것이 쉬워집니다. 이 문장의 핵심은 '공짜로 받았으면 좀 나눠줘라!'가 아니라 '이따 일단은 거저 받으랑께!'입니다. 거저 주어지는 것들도 거저 받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갸륵한 말씀입니다. 일단 받아도 됩니다. 왜 받지 않습니까? 지금 받지 않으면 앞으로도 더 안 받고 못 받을 텐데.
감사할 게 없어도 감사하는 사람들은 기적을 만듭니다. 태풍으로 사과 농사를 망친 농부가 나무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사과를 두고 '안 떨어지는 기적의 사과'라고 이름 붙여 팔아서 수능 시즌에 대박을 냈듯이 전혀 기대하지 못한 역전도 가능합니다. 받은 게 없다고 생각할 때에는 그래도 나무에 붙어 있는 사과 몇 개를 바라봐야 합니다. 거기에도 희망이 있습니다. 가진 것이 없이 초라한 나에게도 태풍에도 살아남은 사과 몇 개 쯤은 있습니다. 그것들에 마음의 문을 열고 감사하기 시작하면 영화에서나 보던 반전도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첫 문장의 앞뒤를 바꾸어 볼 수도 있습니다.
거저 주었으니 거저 받아라.
거저 주고 거저 받자.
알몸으로 태어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도 참 기적입니다. 수많은 것들이 내 생명을 지탱해왔습니다. 그동안 내가 입으로 삼킨 음식을 떠올려 보면 그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이 내 몸을 이루고 나를 살렸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잠시 생각해보세요. 도대체 내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잡아먹은 것인지 가늠할 수도 없습니다. 사계절 쉬지 않고 자연이 제 흐름대로 흘러가며 씨앗이 열매를 맺고 나를 먹여 살렸습니다. 나는 자연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이 유장한 생태계에 심각한 고민이나 추가하지 않았으면 다행입니다.
온 우주와 자연, 뭇 생명이 나를 살려온 것을 나는 과연 거저 받았는가? 자연은 이렇게 묻습니다. 거저 주었는데 거저 받았니? 아무 조건 없이 주었으니 받으라고 합니다. 아 인간사에 찌들어 그렇게는 생각하지 못했었다면 지금 다시 돌이키고 마음의 문이 혹시 닫혀 있나 확인해 보면 됩니다. 그리고 마음을 조금 더 열고 감사함을 조금씩 키워 나가면서 내 삶이 나아지길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복도 '얼씨구나! 열린 문일세!'하고 들어올 것입니다. 앞으로 쏟아질 복을 감당하려면 문을 단단히 열어두어야 합니다.
이제 다시, 이 정도 마음이 열렸다면 우리는 문장을 재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거저 주는 것의 주체가 온 우주와 자연과 뭇 생명에서 나에게로. 이 전환은 지구 축의 변화에 버금가는 변화입니다. 받은 것이 있나 없나 따지는 옹색함에서 이제는 뭐라도 줄 게 없는지 행복하고 기쁜 고민을 하는 사람으로. 이제는 내가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고 세상과 이웃을 대하는 사람은 뭐라도 하나 주는 사람이 됩니다. 나는 거저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이 선순환의 고리에서 거저 주는 사람은 필시 거저 받는 사람이 됩니다.
나는 거저 줬을 뿐인데 받고 또 받고, 열린 문으로 쏟아지는구나. 얼씨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