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자신 Dec 02. 2020

커피는 죄가 없잖아요

왜 자꾸 커피만 줄이래?

남편이 최근 커피에 푹 빠졌다. 연애시절부터 같이 카페에 가면 늘 아메리카노만 마시던 그였고, 나는 달달한 케이크 없이는 절대 다 마시지 못하던 쓰디쓴 커피 한 잔을 조용히 다 비워내는 그가 참 신기했다. 그런 남편에게 커피를 직접 내려서 마시는 취미가 생기리란 건 어쩌면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처음에는 지인이 빌려 준 핸드드립 세트로 로스터리샵이나 인터넷으로 구입한 커피콩을 갈아서 커피를 내렸다. 그러다 내가 설거지 도중에 서버(커피를 내려받는 주전자)를 깨 먹는 바람에 이사 뒤로 미뤄뒀던 핸드드립 세트 구매를 앞당겨 실행했다. 시간이 지나자 생두를 사서 홈로스팅을 시도했다. 에어프라이어로 시작한 첫 번째 로스팅은 처참하게 실패하고 유튜브 동영상을 몇 번 찾아보더니 프라이팬에 직접 콩을 볶았다. 균일하게 색깔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로스팅 후 하루가 지나 내려 먹은 커피 맛은 꽤 근사했다.


나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을 어깨너머로 지켜보았고 커피에 빠진 남편 덕에 날마다 신선한 원두로 직접 내린 커피 한 잔을 꼬박꼬박 마시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달달구리' 없이는 커피 한 잔 제대로 마시지 못하던 내가 남편을 따라 호로록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어느새 그 쌉쌀한 맛을 즐기고 있다. 로스팅 방법에 따라, 콩을 보관한 시기나 방법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커피 맛을 느끼며 한 잔의 커피를 앞에 두고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즐겁다.




내가 몸 담고 있는 회사에서는 상시적으로 모금 캠페인을 진행한다. 우리 회사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복지단체들이라면 각자의 의미 있는 사업들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모금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모금할 때 사람들에게 쉽게 건네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커피 한잔 값을 줄이면, 당신도 이웃을 도울 수 있습니다"이다. 이런 식의 멘트가 많이 쓰이게 된 건 아마도 커피에 대한 지출이 의식주와 같이 필수적이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쉽게 줄일 수 있는 영역이라 여기기 때문이리라. 밥을 굶으라고 하는 것보다 커피 한 잔 줄이라고 하는게 더 쉬운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커피'가 우리 부부에게 주는 영향이 점점 커지면서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커피는 죄가 없는데, 왜 자꾸 커피만 줄이래?


사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커피는 이제 많은 이들에게 일상의 일부가 되어 있다. 밥집만큼 많은 카페, 커피숍 숫자만 봐도 그렇다. 좋은 일 하는 것도 좋지만 어찌 보면 식사나 옷을 사 입는 것만큼 자연스레 우리 일상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커피를 무작정 '가장 먼저 포기하기 쉬운', 사소하고 무가치한 습관 정도로만 취급한다면 그저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많은 이들에게 쉼과 위로가 되어주는 커피에게 조금 미안한 일이지 않을까.


나의 것을 이웃과 나누기로 결심하는 마음만큼이나 나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고픈 마음도 중요하기에, 이제는 "커피 한 잔 대신"이란 말속에 담긴 그 "커피 한 잔"이 지닌 가치가 단순히 물질적인 것만은 아니란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내가 아껴서 나눠 줄 수 있는 것은 커피 한 잔 살 수 있는 만큼의 돈일 수도 있고, 커피를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떤 선택지에 나를 넣던지 나눔을 실천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구체적으로 어떤 소비를 줄일 것인지는 오로지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커피에 대한 우리의 애정이 생각보다 빨리 식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팍팍한 일상 속에 커피 한잔이 주는 위안은 생각보다 더 크고 따뜻하다. 그라인더에 콩을 갈 때 나는 잔잔한 커피 향. 드리퍼에 커피가루를 넣고 커피를 내리면 그 향은 더 진하고 확실하게 집 안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각자의 잔에 짙은 색 커피를 채워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고단했던 하루가 조금은 옅어지고 편하게 숨을 내쉴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당분간 커피를 줄이지 않기로 한다. 대신 이 한 잔의 커피가 주는 위로에 힘 입어 다시 시작된 우리의 일상을 열심히 살아내기로, 그리고 이 일상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웃들을 위해 우리 몫의 일부를 아끼고 덜어내어 기꺼이 나누자고 약속하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가 가장 찬란했던 그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